[초동시각]주주의 침묵이 끝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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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주주총회 시즌이 본격화하자 재계에서는 '경영권 위협'이라는 말부터 먼저 쏟아진다. 최근 몇 년 새 '주주제안'의 강도가 확연히 달라진 여파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배당 확대' 수준에 머물렀던 요구는 이제 이사회 구성, 자본 배분, 지배구조 전반을 겨냥하고 있다. 더욱이 올해는 주주 보호에 무게를 둔 개정 상법 시행까지 맞물리며 기업들의 긴장감은 한층 커진 모습이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투자자가 질문을 던지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은 당연한 권리 아닌가.

한국 시장에서 주주의 침묵이 끝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제 투자자들은 기업의 배당 정책과 지배구조, 자본 배분까지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올해 17개 기업에 주주제안을 보내 독립 이사 선임, 이사 보수 정상화, 주주 권리 명문화 등을 요구했다. DB하이텍에는 내부거래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특별감사인 선임을, 신풍제약에는 횡령 회수금의 배당을 촉구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행보도 점점 거세지고 있다. 팰리서캐피탈, 얼라인파트너스, 트러스톤자산운용, VIP자산운용 등이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경영전략, 자본 정책, 내부거래 구조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이어갔다. 이사회 진입 등 의사결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여기에 '거수기' 비판을 받아왔던 국민연금 역시 올해 주총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결국 한국 자본시장에서도 소액주주와 행동주의 펀드, 기관투자가가 동시에 움직이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향후 기업 지배구조의 변화로 이어지며 한국 자본시장에 새로운 기준과 규범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크다.


물론 재계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행동주의 확산은 당장 기업 경영을 단기 성과 중심으로 몰아갈 수 있다. 차익실현을 우선하는 '먹튀' 우려도 제기된다. 경영진 입장에서 주주제안은 분명 경영 불확실성을 키우는 변수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자본시장에 새로운 기준이 형성되고 있는 지금, 주주들의 적극적인 행보를 단순히 경영권 침해로 바라보는 것은 변화의 흐름을 외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한국 기업 지배구조는 제한적인 주주 소통, 폐쇄적인 이사회 구조 등으로 꾸준히 비판받아왔다. 지금 나타나는 주주 행동의 확대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던 견제 장치가 뒤늦게 움직이기 시작한 결과일 수 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견제를 기반으로 한 긴장 관계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장치로 작동한다. 투자자가 질문하고 경영진이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사회는 더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자본 배분의 기준 역시 투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반복될 때 시장 규범과 기업지배구조도 선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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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시장이 중요한 전환점 위에 서 있음은 분명하다. 주주 행동의 확대를 단순한 위협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시장이 성숙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도 기업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제 침묵을 깬 주주들과 함께 시장의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조슬기나 증권자본시장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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