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사업 판 흔드는 '민복' 등장
정치적 유불리 말고 실질적 효과 따져야

[서울NOW]서울시의 고민 '민간도심복합개발'
AD
원본보기 아이콘

서울시가 새 제도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올해 6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민간 도심복합개발사업(민복)이 기존 정비사업 판을 흔들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복은 2024년 2월 제정된 '도심복합개발 지원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한다. 서울시는 지난 1월 관련 조례를 공포하며 시행 채비를 마쳤다. 민복은 성장거점형과 주거중심형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성장거점형은 지난달 19일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표한 '다시, 강북 전성시대 2.0' 프로젝트의 핵심 수단으로 이미 전면에 내세워졌다.

문제는 주거중심형이다. 역세권 500m 이내 노후 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까지 종상향해주고, 기준 용적률을 법적 상한의 1.4배, 즉 최대 700%까지 끌어올려 주는 이 제도는 기존 어떤 정비사업과 비교해도 혜택이 압도적이다. 통합심의로 인허가 기간 단축도 가능하다. 신탁사·리츠가 시행을 맡아 조합 내홍 같은 고질적 분쟁 리스크도 낮다.


이쯤 되면 자연스러운 질문이 나온다. 기존 사업을 왜 하겠느냐는 것이다. 서울시가 공을 들여 구축한 정비사업 생태계는 촘촘하다. 역세권 활성화,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등 지역 여건과 사업 성격에 따라 다양한 경로가 마련돼 있다. 현재 역세권 장기전세주택 사업만 해도 122곳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민복 주거중심형이 같은 역세권에서 더 높은 용적률과 빠른 절차를 내걸고 등장하면, 기존 사업자들이 갈아타려는 유인은 충분하다. 사업 해지 후 재추진은 처음부터 동의서를 다시 걷는 것을 의미한다. 공급 지연이 불가피하다.


서울시 관계자도 이 점을 인정했다. "주거중심형이 기존 정비사업보다 너무 유리하면 사업을 해지하고 전환하려는 현장이 늘어나 주택 공급에 혼란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는 지금 민복을 장려하거나 억제하는 게 아니라 기존 사업과의 형평성을 맞추는 선에서 운영 기준을 짜고 있다. 준주거 용적률을 기존 역세권 사업들이 운영해온 500% 내외에 맞추는 방향도 검토하고 있다. 간선도로 접도 요건 강화, 공공기여 확대 등 문턱도 높이려 한다.


방향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서울시가 형평성을 내세우며 민복의 혜택을 기존 사업 수준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운영 기준을 짠다면, 민복은 존재 이유를 잃는다. 민복이 등장한 배경은 공공 주도 방식의 한계, 기존 정비사업의 더딘 속도와 낮은 사업성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 대안으로 설계된 제도의 장점을 기존 제도에 맞게 깎아내리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도시 계획의 일관성과 난개발 우려를 무시할 수는 없다. 일조권 침해, 기반 시설 과부하, 경관 훼손은 실제 문제다. 그러나 이는 도로·교통·경관 등 물리적 여건을 기준으로 입지를 선별하고 공공기여를 정교하게 설계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서울시의 진짜 고민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일 수 있다. 민복이 활성화될수록 그동안 서울시가 공들인 역세권 사업과 신속통합기획, 모아타운 등의 브랜드 사업이 빛을 잃는다. 자기 정책을 스스로 대체하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부담이다.

AD

그러나 주택정책의 판단 기준은 기존 제도의 생존이 아니라 실질적인 공급 효과여야 한다. 기존 제도에 한계가 있다면 더 나은 제도로 대체하는 게 옳다. 제도 간 경쟁이 결국 공급 효율을 높인다. 서울시가 민복의 운영 기준을 수립할 때 정치적 유불리가 아니라 서울시민에게 더 많은 집을, 더 빠르게, 더 좋은 입지에 공급할 수 있느냐는 질문만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제도는 누군가의 업적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게 아니다.


김민진 사회부 지자체팀 부장 ent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