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최고가격제 사흘째…주유소 가격 인하 '거북이걸음'
도매가 대폭 인하에도 판매가 반영 휘발유 53%·경유 35%
폭등 때와 대조적 인하 속도…주유소 "고가 재고 소진 필요"
정부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급등한 기름값을 잡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지 사흘째를 맞았지만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 인하 폭은 여전히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기에는 이른바 '빛의 속도'로 가격을 올리던 주유소들이 가격 인하 국면에서는 '거북이걸음'에 가까운 속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40.9원으로 전날보다 4.5원 내렸다. 자동차용 경유 가격은 같은 시간 1842.1원으로 5.9원 하락했다. 다만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 첫 이틀(13~14일) 두 자릿수를 기록했던 가격 하락 폭은 이날 한 자릿수로 줄며 하락세가 다소 둔화된 모습이다.
실제로 정부가 낮춘 정유사 공급가격에 비해 주유소 판매가격 인하 폭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정부는 지난 13일 0시부터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석유 도매가격 상한을 제한하는 '석유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했다. 이에 따라 향후 2주간 도매가격 상한은 ℓ당 휘발유 1724원,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설정됐다. 이는 11일 정유사가 제출한 평균 공급가격과 비교해 휘발유 109원(1833원→1724원), 경유 218원(1931원→1713원), 등유 408원(1728원→1320원) 낮은 수준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사흘간 실제 주유소 판매가격은 휘발유 57.9원, 경유 76.9원 인하에 그쳤다. 주유소들은 정부가 낮춘 공급가격 인하분 가운데 휘발유는 약 53%, 경유는 약 35% 수준만 판매가격에 반영한 셈이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주유소들이 휘발유 약 200원, 경유 300원가량 가격을 빠르게 올렸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가격 인하 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찔끔 인하'의 이유로 주유소 업계는 재고 소진 문제를 가장 먼저 꼽는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주유소마다 재고 처리 기간이 천차만별"이라며 "판매량이 많은 곳은 하루에 1~2번씩 기름을 받기도 하지만 길게는 두 달에 한 번 재고를 받는 주유소도 있다"고 설명했다. 2000원대에 매입한 재고가 남아 있는 주유소 입장에서는 즉각적인 가격 인하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주유소 형태별로도 온도 차는 뚜렷하다. 정부 정책에 민감한 정유사 직영 주유소와 석유공사·농협 등의 지원을 받는 알뜰주유소는 선제적으로 가격을 낮추며 전국 가격 하락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별도의 손실 보전 장치가 없는 일반 주유소는 마진 확보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이에 주유소협회는 지난 13일 열린 '석유 시장 점검 회의'에서 산업통상부에 현재 주유소 판매가격의 1.5% 수준인 카드 수수료를 절반 수준으로 낮춰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협회 측도 시장 경쟁에 따라 가격 인하는 결국 시간 문제라고 보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주유소는 단돈 10원 차이에도 손님이 몰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업종"이라며 "옆 주유소가 가격을 내리면 결국 따라 내릴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 주부터 가격이 본격적으로 안정될 것으로 전망했다. 양기욱 산업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정유사 공급가격 최고가격 고시를 통해 소비자도 판매가격에서 공급가격을 뺀 나머지가 주유소 마진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며 "마진이 어느 정도인지 소비자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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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공급가격 인하분이 소비자 판매가격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전국 주유소 가격 모니터링을 강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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