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별 재고상황 따라 금액 달라
적용방식·거래기준 초기 혼선
정유업계 "시장구조엔 부담"
시장 안정엔 일정 부분 도움
가격 직접 통제 신중할 필요

정부의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된 첫날인 13일 오전, 경기도 내 한 주유소에서는 직원이 분주하게 가격 표시판의 숫자판을 갈아 끼우고 있었다. 이 주유소의 휘발유 가격은 전날보다 30원 내린 수준으로 수정됐다.


인근의 다른 주유소들도 비슷한 폭으로 가격을 조정하며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모습이었으나 모든 곳이 인하에 동참한 것은 아니었다. 일부 주유소는 기존 가격을 고수하면서 같은 지역 내에서도 주유소별로 제각각 판매 가격이 엇갈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13일 오전 경기도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유종 가격표를 변경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13일 오전 경기도의 한 주유소에서 직원이 유종 가격표를 변경하고 있다. 서믿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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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본지가 서울 및 경기도 일대 거점 주유소 10여곳을 확인한 결과, 대다수 주유소가 휘발유 가격을 30원가량 낮춘 상태였다. 한 주유소 직원은 "사장님이 가격을 내리라는 연락을 받고 방금 가격을 조정하는 중"이라며 "기름이 아직 남아 있지만 여론을 의식해 미리 가격을 내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유소 운영자는 최고가격제 시행 하루 전인 12일 이미 가격을 낮췄다고 전했다. 그는 "3일 전 오른 가격으로 들여온 기름이 아직 남아 있지만 혹시 정부 제재를 받을까 우려돼 미리 30원 정도 가격을 내렸다"고 말했다.

정부가 13일 0시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지만 시장 현장에서는 가격 반영 시점과 공급 기준 등을 둘러싼 혼선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주유소에서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을 이미 인하한 반면 다른 주유소는 기존 가격을 유지하는 등 판매가격이 제각각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는 주유소별 판매량과 재고 상황 차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판매량이 많은 주유소는 재고가 비교적 빠르게 소진되면서 가격을 먼저 조정했지만 재고가 남아 있는 곳은 기존 가격을 유지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최고가격제가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적용되는 구조인 점도 현장 가격 차이를 키우는 요인으로 꼽힌다.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조정하더라도 실제 주유소 판매가격은 재고와 공급 시점에 따라 반영 속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에서도 정책 적용 방식과 거래 기준을 둘러싼 문의가 이어지는 등 초기 혼선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가격을 제한하는 제도일 뿐 주유소 판매가격을 직접 규제하는 것은 아니다"며 "주유소는 기존에 확보해둔 재고 가격에 따라 판매가격을 유지하거나 조정할 수 있어 당분간 가격이 제각각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유가 안정 효과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장 구조 측면에서는 부담 요인도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정유사는 국내 판매뿐 아니라 국제 시장에 수출도 할 수 있는 구조인데 가격 상한이 설정되면 국제 가격보다 낮은 수준에서 판매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원가 손실이라기보다는 국제 가격에 판매하지 못하는 '기회비용 손실'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제유가가 급격히 상승할 경우 정유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국제 제품 가격 변동이 크지 않아 큰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가격이 급격히 오르는 상황에서는 정유사 입장에서 대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이번 제도는 기준 가격 산정 방식상 시장 상황을 반영하는 데 최소 2주 정도 시차가 발생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다만 업계에서도 정책 취지를 고려할 때 일정 부분 시장 안정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상한이 설정된 만큼 정유사와 주유소 모두 정부 기조를 고려해 가격을 운영할 수밖에 없다"며 "단기적으로는 유가 상승 속도를 완화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조치의 정책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정부가 최고가격을 설정하고 차액을 보전해 주겠다는 취지로 보이지만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보전할지나 재원 마련 방안이 명확하지 않다"며 "제도가 장기화될 경우 재정 부담이 상당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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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교수는 또 "유가 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취약계층을 선별 지원하기보다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은 정책 효율성과 형평성 측면에서 논란이 있을 수 있다"며 "에너지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정책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믿음 기자 fait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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