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가공식품 가격 줄줄이 인하
간판 제품은 가격 인하서 제외
서슬퍼런 정부 압박에 일부 품목 카드

[기자수첩]'가격 인하' 제외된 신라면과 불닭볶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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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오후 늦게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매캐한 향에 깜짝 놀랐다. 편의점 안에는 하교한 학생들로 가득했다. 학생들은 단체로 테이블 앞에 모여 불닭볶음면을 먹고 있었다. 이후 그 학생들을 같은 편의점에서 종종 마주쳤다. '하교 후 불닭볶음면'은 그들에겐 일상인 듯했다. 용돈 중 많은 부분이 불닭볶음면을 구입하는 데 쓰이겠다고 생각했다.


12일 식품 업계가 일제히 라면과 식용유 등 일부 제품 품목 가격을 인하하고 나섰다. 품목 명단에 불닭볶음면은 포함되지 않았다. 인기 제품인 신라면과 진라면, 짜파게티, 너구리 등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주요 제품이 빠진 생색내기 인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 업계는 지적을 들으며 한숨을 크게 내쉰다. 지난해 시작된 밀가루 담합 조사는 가공식품 제품 가격 인하 압박으로 이어졌다. 밀가루와 설탕 등 일부 원재료 값은 내려갔지만 동시에 팜유 등 다른 원자재 가격은 크게 올랐다. 환율 상승에 수익성 부담도 커졌다. 서슬 퍼런 정부의 압박과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현실 앞에서 이들이 선택한 건 결국 핵심 제품을 제외한 일부 품목 가격 인하 카드였던 것이다.


쏟아지는 비판에 업계 관계자는 "주요 제품이 들어가면 회사가 위험해진다"고까지 하소연했다. 실제 농심은 2023년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신라면 가격을 50원 낮춘 적 있다. 이듬해 농심의 영업이익은 23.1% 감소했다. 결국 농심은 지난해 신라면 가격을 950원에서 1000원으로 원상 복구했다.

업체들은 '내수 판매 비중이 높은 제품으로 물가 안정에 동참하고자 한다'는 추가 설명을 내놨다. 농심은 이번에 신라면을 제외했지만 매출 규모가 1000억원이 넘는 안성탕면을 포함한 일부 제품을 가격 인하했다고 항변했다. 동시에 이번 가격 인하로 110억원의 이익 감소가 예상된다고 봤다. 삼양식품도 "수출 비중이 큰 불닭볶음면은 국내 가격 인하가 해외 가격 인하 요구로 이어질 수 있어 파급이 크다"며 "범용 제품인 삼양라면이 이번 가격 인하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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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식품 업계의 가격 인하 소식을 전하며 '위기 극복' '민생 안정' '물가부담 완화'를 언급했다. 편의점에서 만난 그 학생들은 라면 가격 인하 소식을 들었을까. 들었다면 인하 명단에 불닭볶음면이 있는지부터 찾아보고는 크게 아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주요 제품이 빠진 이번 가격 인하가 소비자의 일상 부담을 덜어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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