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②"지금이 마지막"… 개정 상법에 기업들 '지배력 방어' 총력
집중투표제 시행 앞두고 이사 임기 조정
작년 교환사채 발행·자사주 맞교환 급증
국민연금 "상법개정 취지 우회 안건 반대"
①개정상법 시대 열렸다…3월 주총 키워드는
②"지금이 마지막"…상법 개정에 기업들 '지배력 방어' 총력
③'주가누르기 방지법' 본격화…전문가들 "핵심은 상증세 개편"
④"결국 기관이 움직여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현실
⑤마지막 퍼즐은 공시제도…"주주 배제한 '결과 공시' 뜯어고쳐야"
개정 상법 시대를 맞아 기업들도 '막차 타기' 대응에 나섰다. 자사주 강제 소각 의무화를 앞두고 지난해 자사주 활용 교환사채(EB) 발행·자사주 교환이 급증한 데 이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는 지배주주의 지배력 방어를 위한 안건이 다수 상정됐다. 하반기부터 본격 시행 예정인 집중투표제, 이사 및 감사위원 선임 등에 대비한 행보다. 상장사들로선 이번 주총이 이사회 구성을 지배주주에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운영 효율화'를 앞세운 이들 기업의 움직임이 법 개정 취지를 우회하는 '틈새 전략'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주주권 강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관투자가와 의결권 자문사의 감시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집중투표제 피하자"…기업 막차 전략 살펴보니
17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지난주까지 주총 소집공고를 완료한 코스피200·코스닥150 상장사 328개사 가운데 삼성전자, 삼성SDS, 한화솔루션, 오뚜기, GS, 녹십자, 하이트진로 등 23개사가 이사 임기 3년을 '3년 이내'로 바꾸는 정관 개정안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셀트리온, 롯데케미칼, 카카오, 하이브 등 32개사는 이사 수 상한을 축소하기로 했다.
이는 하반기부터 시행되는 집중투표제 등 개정 상법 조항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기업 측 대응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시차 임기제'로 어떻게든 집중투표제를 실시하지 않아 보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정관 개정안을 올리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정 연도 주총에서 선임해야 할 이사 수가 많아질 경우 소액주주가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이에 집중투표제의 화력 자체를 분산하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이사회 상한을 설정 또는 축소한 것 역시 주주제안 후보가 들어올 여지를 줄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그간 한국 ESG연구소를 비롯한 기업지배구조 관련 기관들은 지난해 상법 개정이 추진될 때부터 기업들이 이러한 시차임기제, 이사회 정원 축소를 통해 개정 상법 무력화에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해왔었다.
'경영권 방어'를 명목 삼아 개정 상법 대응에 나선 기업들의 행보는 지난해부터 일찌감치 확인됐다. 지난해 자사주 활용 EB 발행과 기업 간 자사주 교환이 급증했던 게 대표적이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도입이 가시화되자 기업들이 보유 자사주를 소각하기 전에 자금 조달이나 전략적 지분 관계 형성에 활용하려 한 것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EB 발행 규모는 2023년 9340억원에서 2024년 1조9840억원, 2025년에는 4조7790억원으로 급증했다. 불과 2년 만에 발행 규모가 5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기업 간 자사주를 교환하는 방식의 '우호지분 확보' 사례도 잇따랐다. 기업이 자사주를 보유할 때는 의결권이 없으나, 제3자에게 처분할 때 의결권이 되살아나는 점을 고려한 경영권 방어 전략이다. 특히 이러한 자사주 맞교환은 사업적 연관성이 낮은 기업들 사이에서도 확인돼 눈길을 끌었다. 주류기업 무학은 자동차 부품업체 삼성공조와 약 41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맞교환했고, 완구업체 오로라월드는 교육기업 대교, 아웃도어업체 동인기연과 각각 자사주를 교환했다. 한 자산운용전문가는 "일본 등에서 상호주 관행을 중장기 성장 투자를 저해하는 구조적 비효율, 일종의 카르텔로 보고 청산해야 한다고 개혁에 나선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시장 감시 중요"…자문사 역할 확대 전망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개정 상법이 주주권 강화라는 원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제도 안착까지 시장의 감시 기능이 더욱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가인 심혜섭 변호사는 "개정 상법에 자사주 소각 의무가 도입됐더라도 '경영상 필요'라는 명목으로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에 활용할 여지가 남아 있다"며 "정관에 관련 근거가 마련되면 전략적 투자 명목으로 다른 회사나 계열사에 넘기는 방식도 가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3차례에 걸친 상법 개정 이후에도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는 점을 절감한다"며 "적어도 상장회사에 대해서는, 이사의 임기를 기본적으로 1년으로 해 매년 주주들로부터 재신임받도록 하고 집중투표제 도입의 취지도 정확히 살리는 것이 좋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들의 관심은 물론 기관투자가, 의결권 자문사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란 관측이다. 올해 주총부터 상법개정 취지를 반영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힌 국민연금의 경우 18일 삼성전자 주총에서 논의될 이사 임기 변경(3년 이내) 안건과 관련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한 상태다. 국민연금은 주요 기업들이 상정한 ▲이사 수 상한 신설 또는 축소 ▲감사 정원 축소 ▲자사주 보유·처분 근거 신설 등 안건에 대해서도 상법 개정 취지를 우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원칙적 반대' 방침을 세웠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공동대표는 "기업들도 이제는 단순히 주주총회에서 안건의 통과 여부뿐 아니라, 왜 가결 또는 부결됐는지 그 결과를 분석하고 소통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거 기업 대주주들이 자사주나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썼던 경험이 있기에 기관투자가들도 염려가 크다.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라면 확실히 의사를 밝히고 중장기적 가치 제고를 위해 잘 쓰겠다는 설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민우 기자 letzw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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