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에게 '이 기술' 있었다면"
"그림이 아니라 고문에 가깝다" 500여년 전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천지창조'를 그리는 동안 미켈란젤로는 얼굴로 쏟아지는 물감과 싸우며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4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하는 동안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이 미켈란젤로에게는 고통 그 자체였던 셈이다. 국내 연구진이 미켈란젤로가 겪었던 고통을 해소할 기술을 개발했다. 소위 머리맡에서 떨어지는 물감을 붙잡는 기술이다. 이 원리는 천장 그림을 넘어 기울어진 표면에서 액체막이 무너지는 문제를 해결해 정밀 코팅, 전자회로 인쇄, 3D 프린팅, 우주 환경에서의 유체 제어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KAIST는 기계공학과 김형수 교수 연구팀이 중력에 의해 아래로 쏟아지는 현상의 근본 원인인 '중력 불안정성'을 계면유체역학적(액체 표면에서 작용하는 미세한 힘의 균형과 관련된 역학)으로 재해석, 거꾸로 매달린 액체에 소량의 휘발성 액체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이를 제어하는 방법을 제시했다고 12일 밝혔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느낀 고통은 천장에 물감을 덧칠할 때 물감이 천장에서 온전히 머무르지 않고 아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목욕탕 천장에서 수증기가 응결되면 얇은 물층이 생기고 시간이 흐를수록 물층은 물방울로 모여 결국에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핵심은 중력이다. 위쪽 표면에 맺힌 액체가 중력에 의해 무너지는 현상을 '레일리-테일러 불안정성(Rayleigh-Taylor instability)'이라 한다. 그간에는 중력이 존재하는 한 이러한 현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연구팀은 거꾸로 매달린 액체에 소량의 휘발성 액체를 섞는 방법으로 '레일리-테일러 불안정성'을 해결할 방안을 고안했다. 휘발성 성분이 증발하면 액체 표면의 농도 분포도 달라진다. 액체 표면이 스스로를 안쪽으로 잡아당기는 힘으로 물방울이 둥근 형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원리다.
표면장력에 차이가 생기면 장력이 큰 쪽이 작은 쪽을 끌어당기며 표면을 따라 흐름이 발생하는데 이를 '마랑고니 효과(Marangoni effect)'라고 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표면 흐름이 아래로 떨어지려는 액체를 붙잡아 줘 중력에 의한 불안정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실험과 이론을 통해 규명했다.
예컨대 물 위에 후춧가루를 고르게 뿌려 놓으면 가루는 그대로 떠 있다. 그런데 가운데 세제 한 방울을 떨어뜨리면, 후추가 순식간에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이는 세제가 닿은 부분의 표면장력이 주변보다 약해져 장력이 더 강한 바깥쪽이 액체를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이 결과 표면을 따라 흐름이 생기고 후추 입자도 함께 이동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휘발성 액체가 증발할 때 이와 같은 표면장력 차이를 만들어냈다. 다만 이번에는 후추를 밀어내는 대신 액체를 위쪽으로 끌어올려 아래로 떨어지려는 힘을 억제한 것이 다른 점이다.
이를 적용할 때 특정 조건에서는 액체막이 중력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유지됐으며, 일부 조건에서는 액적이 떨어지지 않고 액막이 주기적으로 진동하는 새로운 거동도 관찰됐다. 이는 외부 에너지 공급 없이 액체의 조성과 증발이라는 자연적 과정만으로 중력 불안정성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원리는 정밀 코팅, 인쇄, 적층 공정 등에서 보다 얇고 균일한 액체막 구현을 가능하게 한다. 또 기울어진 표면에서도 안정적인 도포가 가능하도록 돕는다. 이를 활용해 3D 프린팅 공정이나 우주와 같은 특수 환경에서도 유체 제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내다본다. 미켈란젤로가 500여년 전 겪었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해 미래 산업 기술로 이어질 가능성이 점쳐지는 셈이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는 액체의 조성과 증발이라는 자연적 과정을 활용해 외부 에너지 없이 중력 불안정성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음을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며 "이 원리는 코팅·인쇄·적층 공정은 물론 우주 환경에서의 유체 제어 기술로도 확장해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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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연구에는 기계공학과 최민우 석사·박사통합과정 학생이 제1 저자로 참여했다. 연구 성과(논문)는 최근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사이언스(Advanced Science)' 온라인에 게재, 표지논문(Frontispiece)으로도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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