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항복 없는 승리' 미국의 승리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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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면 이긴다."


현대 전쟁사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의 자존심을 무너뜨린 적들의 '승리 공식'이다. 제2차 대전 이후 미국은 유독 '시간의 늪'에서 무력했다.

1955년 베트남 전쟁(1964년 8월부터 직접 참전)이 그 서막이었다. 미국은 1680억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을 이 전쟁에 쏟았다. 5만8220명에 달하는 청춘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나 정글 속에 숨어든 베트콩의 게릴라전은 미국의 첨단 화력을 무력하게 했다. 전쟁 19년만인 1973년 평화 협정이라는 이름의 출구전략이 마련됐으나, 2년 뒤 북베트남이 사이공을 점령했다. '머나먼 전쟁'은 패배의 영수증만 남겼다. 승리의 문고리는 끝까지 버틴 자들의 손에 쥐어졌다.


'영원한 전쟁'으로 불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20년도 패전으로 기록됐다. 9·11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라덴을 사살하며 전술적 승리를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신기루에 불과했다. 명확한 국가 재건 전략 없이 시작된 전쟁은 2조3130억달러라는 매몰 비용만 발생시켰다. 2021년 8월, 미군이 철수하기도 전에 탈레반은 수도 카불을 탈환했다. 소련, 영국 등도 정복하려다 고전을 면치 못해 '제국의 무덤'이라 칭했던 아프간의 명성을 재확인하는 순간이 됐다. 전쟁 중 탈레반 지도자가 했다던 "서방 측은 시계를 가졌지만 우리는 시간을 가졌다"는 말만 유명해지게 됐다.

이라크 전쟁 역시 '독이 든 성배'였다. 사담 후세인 정권을 단 며칠 만에 무너뜨리면서 승기를 잡은 듯했다. 그러나 전쟁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수뇌부 제거로 생긴 권력의 진공 상태는 종파 간의 처절한 내전으로 이어졌다. 실종된 명분과 전후 관리 부재는 '테러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탄생'이라는 지정학적 역설을 낳기도 했다.


압도적 강자를 상대하는 약자의 승리는 '파괴'가 아니라 '인내의 연장'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을 받은 이란도 이 궤적을 충실히 따른다. 미국의 공습으로 숨진 알리 하메네이 전 최고지도자의 뒤를 이어 선출된 차남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타협을 모르는 강경파로 꼽힌다. 미국에 굴하지 않고, 체제 존립을 건 장기전을 택한 것이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이번 전쟁은 단기적 행동이며 곧 끝날 것"이라 공언하자, 이란은 "단 1ℓ의 원유도 내보내지 않겠다"며 아시아 지역 원유 대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하거나 화물선을 공격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이는 단순한 군사적 대응에 그치지 않는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을 인질로 삼아 미국의 경제적 인내심을 시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경제적 출혈을 누가 더 오래 감당하느냐에 달리게 됐다. 다만 요동치는 유가와 증시, 그리고 오는 11월 중간선거라는 정치적 시한폭탄은 미국의 편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이란을 대하는 백악관의 대응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이란의 무조건적인 항복 없이는 협상도 없다"고 외쳤던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백악관은 "이란의 항복 선언과 관계없이, 목표 달성 시 종전할 수 있다. 이는 최고 사령관(트럼프 대통령)에게 달렸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승리 공식을 '적의 궤멸'이라는 상징성에서 추구하기보다는 '실익'이라는 합리성에서 찾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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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적절한 시점만 설정하면 된다. 세계 최강국이라 해도 '시간을 가진 자'를 이기는 어렵다. 역사는 준엄하게 경고하고 있다.


황준호 기자 rephwa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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