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기톱 자국과 옹이, 껍질까지 남긴 조각 175점
아르헨티나의 거대한 나무와 만나 더 커지고 더 단단해진 '조각'

나무는 끝내 표면을 포기하지 않았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사진 호암미술관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 전시 전경. 사진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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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전시장에 선 통나무 조각들 앞에 서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피부다. 전기톱이 지나간 홈이 깊게 패여 있고, 끌이 긁고 간 자국과 망치가 찍어낸 흔적이 겹쳐 있다. 껍질은 다 밀려나지 않았고, 옹이는 자기 자리를 끝내 내주지 않았다. 깎였는데도 다 깎이지 않은 얼굴. 누군가 그것을 완성이라 부르더라도, 이 나무들은 여전히 자라는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17일 개막하는 호암미술관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은 조각가 김윤신의 70여 년 작업을 모은 회고전이다. 전시장에는 조각, 판화, 드로잉, 회화를 포함해 175점이 놓였다. 숫자는 크지만, 전시가 남기는 인상은 의외로 단순하다. 오래 나무를 만진 사람의 시간. 그 시간 하나가 전시장 바닥에서 천천히 번져나간다.

김윤신의 말은 작업보다 먼저 철학으로 소비되곤 했다. '합이합일 분이분일'. 둘이 하나가 되고, 나뉘면서 다시 하나가 된다는 뜻. 그런데 전시장에 들어서면 그 말은 문장보다 손의 감각 쪽으로 내려온다. 작가와 재료가 하나가 된다는 말은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톱날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몸을 맞추는 일에 가깝다는 것을 이 조각들이 먼저 시사한다.


11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윤신은 "나무는 바로 나예요"라고 말했다. 이 비유가 전시장에서는 비유처럼 들리지 않는다. 나무와 사람이 닮았다는 뜻이 아니라, 오래 만지다 보니 서로의 결을 닮아버렸다는 쪽에 가깝다. 그는 "머리가 깨끗해서 아무 생각이 없을 때 톱을 들면, 그때부터 공간이 보인다"고도 했다. 미리 구상을 세워놓지 않는다는 말인데, 실제로 그의 조각은 정면을 허락하지 않는다. 어느 쪽에서는 곧게 치솟고, 몇 걸음 옮기면 안쪽이 벌어지며 빈 공간을 드러낸다. 거친 바깥과 환한 속살이 번갈아 나타난다. 자른다기보다, 열어 보인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오는 17일부터 6월 28일까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은 김윤신 작가. 호암미술관 연합뉴스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의 대규모 회고전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이 오는 17일부터 6월 28일까지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은 김윤신 작가. 호암미술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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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초입의 초기 작업들은 이 손이 처음부터 나무를 이렇게 다룬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1970년대 '기원쌓기' 연작과 파리 유학 시절의 판화, 드로잉에는 형태를 쌓고 나누고 비우는 관심이 이미 선명하다. 다만 그때의 탐색은 아직 조용하다. 생각이 먼저 있고, 손이 뒤따르는 시간처럼 보인다. 이후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뒤 조각은 달라진다. 더 커지고, 더 단단해지고, 더 몸 쪽으로 간다. 큰 나무를 만나면서 조각은 아이디어보다 저항을 먼저 갖게 된 것일까.


그 시기의 중심에 놓인 작품이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이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이 조각은 위로 솟아오르면서도 내부를 품고 있다.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로 서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안쪽이 갈라지고 벌어지며 다른 공간을 만든다. 단단한 나무인데도 어딘가 살아 있는 몸 같다. '기골이 옹근 나무'에서 '자연의 파동'이 꿈틀거린다는 표현이 과장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윤신이 왜 이 작품을 특별히 아꼈는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조금은 짐작된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나무를 이야기하며 "톱하고 내가 하나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 말도 전시장에서는 과장이 아니다. 요즘 미술의 표면은 지나치게 매끈한 경우가 많다. 손의 시간은 삭제되고, 제작의 흔적은 뒤로 물러난다. 김윤신의 조각은 반대로 간다. 톱질과 망치질을 숨기지 않고, 균열과 껍질을 끝내 지워버리지 않는다. 재료를 완전히 굴복시키지 않겠다는 태도인지, 끝내 굴복시킬 수 없었다는 고백인지, 그 둘을 쉽게 가를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조각들 앞에서는 형태보다 과정이 먼저 보인다. 작품이라기보다, 작가와 재료가 서로를 버티며 지나온 시간의 단면 같다.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79. 사진 호암미술관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 1979. 사진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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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조각의 몸짓은 달라진다. 수직으로 치솟던 형상들이 좌우로 팔을 벌리기 시작한다. 서 있는 조각이 주변 공간과 말을 섞기 시작한 것이다. 돌조각이 등장하는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돌은 자르고 나서야 비로소 색이 드러난다고 했다. 나무가 결을 통해 시간을 보여준다면, 돌은 절단된 면을 통해 안쪽의 빛을 보여준다. 김윤신의 작업에서 색이 갑자기 들어온 것이 아니라, 재료를 바꾸며 색을 발견하게 됐다는 사실이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읽힌다.


2층으로 올라가면 그 색은 더 분명해진다. 마푸체 부족의 색채 감각을 받아들인 조각들, 팬데믹 이후 나무와 폐자재에 색을 입히고 덧붙인 작업들, 그리고 그가 스스로 '회화-조각'이라 부른 최근작들이 이어진다. 그는 "밖에를 못 나갔다. 나무조각을 주워서 작업했다. 어렸을 때 많이 하던 장난처럼 나무에 뭘 붙이고 그었다"고 말했다. 거장의 후기 작업을 두고 나온 말치고는 지나치게 소박하다. 그러나 그 소박함 덕분에 오히려 말이 남는다.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이기보다, 오래 나무를 만져온 손이 마침내 색까지 만지기 시작한 일처럼 들려서다.


김윤신, 노래하는 나무 2013-16V1, 2025. 사진 호암미술관

김윤신, 노래하는 나무 2013-16V1, 2025. 사진 호암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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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마지막에 놓인 '노래하는 나무 2013-16V1'은 그런 변화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 알루미늄 캐스팅 위에 아크릴 채색을 더한 2025년작. 금속인데도 멀리서 보면 산세 같고, 가까이 가면 팔을 벌린 나무 같다. 조각이면서 그림 같고, 그림 같으면서 다시 덩어리로 돌아간다. 전시 제목의 말이 여기서 다시 떠오른다. 둘이 하나가 되고, 나뉘며 다시 하나가 되는 일. 김윤신은 평생 그 일을 나무와 돌과 색으로 반복해온 셈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평생을 해 온 작품이 후세에 좋은 영향을 줘서,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했다. 흔한 인사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말인데, 전시장을 돌고 나오면 조금 다르게 남는다. 도움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더 잘 깎는 법을 알려주는 일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쉽게 매끈해지지 않는 태도, 재료를 다 이기려 들지 않는 손, 끝내 껍질 하나쯤 남겨두는 마음 같은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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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선 나무들은 오래 버틴 얼굴을 하고 있다. 그 앞에 서 있으면, 사람이 나무를 깎았다는 말보다 나무가 사람을 오래 다듬어왔다는 말이 더 맞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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