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80%가 진심인 '이것'…뒷마당에서 벌어지는 8시간의 화학 실험[맛있는 이야기]
미국 가정 80%가 보유한 바비큐 그릴
요리보다는 과학에 가까운 조리 과정
전문 장비로 열 측정하고 데이터 기록
"화학은 삶이며, 여러분의 파이처럼 삶에는 토대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일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저평가되고 있지요."
2023년 전파를 탄 애플 TV 미니시리즈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 엘리자베스 조트의 이야기를 그린다. 1960년대 미국에서 분자 화학자로 일했지만, 노골적인 성차별에 커리어가 끊긴 조트는 대신 주부들을 대상으로 요리를 알려준다. 다만 화학에 대한 열망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사실, 조트는 음식 조리에 담긴 화학의 비밀을 여성들에게 가르치며, 담대한 꿈을 품으라고 강조한다.
조트의 메시지를 가장 잘 실천하는 요리 분야는 무엇일까. 미국의 '바비큐'는 거칠고 엉성해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섬세한 과학이 숨어있다. 바비큐 애호가들은 최적 불 온도를 찾기 위해 첨단 열 센서를 동원하며, 고기 내부에서 벌어지는 화학 반응에 대한 열띤 토론을 나누기도 한다. 뒷마당에서 펼쳐지는 아마추어들만의 화학 실험인 셈이다.
'과학'에 가까운 바비큐…미국엔 학과도 있다
바비큐는 미국 남부를 대표하는 식문화다. 시작은 스페인, 남미에서 인기를 끌던 훈연 조리법이었으나, 지금은 미국식으로 개조됐다. 은근한 불에서 피어오르는 열기와 연기로 고기를 간접적으로 익히며, 부드러운 육질을 만들어낸다.
2023년 미 하버드대 조사에 따르면, 전체 미국 가정의 80%는 그릴 등 바비큐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바비큐는 미국인의 라이프 스타일에 가까운 식문화다.
다만 바비큐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진정한 바비큐 애호가들은 최고의 육질을 만들어 내기 위해 비싼 장비 구입을 마다하지 않고, 서로 실험 결과를 공유한다. 최고의 바비큐 조리법 개발에 일생을 바친 애호가들은 자신을 '바비큐 구루(BBQ Guru)'라 칭하기도 한다. 바비큐의 본고장인 미국 텍사스에 소재한 A&M 대학교는 '바비큐 과학과'를 개설해 바비큐를 조리할 때 나타나는 화학 반응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정도다.
온도, 연기, 소스 상태에 따라 결과물 천차만별…맛의 화학 실험
어쩌다가 바비큐는 요리 문화를 넘어 과학으로 진화했을까. 바비큐는 열을 이용해 딱딱한 고기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드는 음식이다. 육질은 열기와 연기를 만났을 때 화학 반응을 일으키며 변한다. 특히 미국식 바비큐에서 자주 쓰이는 고기는 양지머리와 엉덩잇살인데, 둘 다 콜라젠 비율이 높은 육류이기에 열을 가해 부드러운 젤라틴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바비큐는 조리 시 열기의 온도, 연기의 입자 구조, 소스의 성분 등에 따라 결과물이 천차만별로 달라지 민감한 요리다. 끝없는 실험을 통해 최적 조리법을 검증해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비큐에 심취한 구루들은 전문 장비를 이용해 6~8시간에 달하는 조리 시간 동안 고기 내부의 온도 변화를 체크하고, 해당 데이터가 육질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꼼꼼히 정리한다.
150만명 넘는 유튜브 채널 구독자 수를 보유한 바비큐 구루 '매드 사이언티스트 BBQ' 제레미 요더는 지난해 한 지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바비큐는 화학 실험이다. 오랜 시간 지켜보며 온도가 고기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데이터를 모니터링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관측하고, 변수를 바꾸고, 데이터를 수집하면서 완벽한 고기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배탈인 줄 알고 지사제로 버텼는데…알고 보니 30...
거침없는 실험 문화 덕분에 요리 재료 선정도 매우 자유롭다. 육류의 연육 작용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무엇이든 사용하기 때문이다. 닭의 꽁무니에 캔 맥주를 통째로 꽂아 넣어 익히는 '비어 캔 치킨'이 대표적인 예시다. 코카콜라를 소스 대신 사용해 갈빗살을 부드럽게 만드는 '콜라 립'도 바비큐 문화에서 탄생했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