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은 어떻게 '태백산 산신령'이 됐나[시사쇼]
태백산 천제단 아래 단종비각 있어
전 한성부윤 추익한이 만난 단종
해마다 음력 9월 3일 제사 지내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역대 20번째로 관객 1200만명을 돌파했다. 흥행 돌풍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태백산과 단종의 인연이 주목된다. 태백산(1,566,7m)에는 단종비각이 있다. 단종은 '태백산 산신령'이다. 왜 이곳에 단종비각이 있는 것일까. 또 단종은 어떻게 태백산의 산신령이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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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시와 경상북도 봉화군에 걸쳐 있는 태백산은 신령스러운 산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장군단, 천제단, 하단에는 무속인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천년의 세월을 버텨온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태백산국립공원 사무소는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심에 있으며 우리 역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지명이다. 순우리말은 한밝달이다. 배달 민족의 어원도 박달->밝달->배달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종비각은 태백산 천제단에서 당골 방향으로 200여m 내려온 곳에 있다. '하늘 아래 첫 사찰',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위치한 사찰인 망경사 조금 위다. 이곳에 단종비각이 건립된 것은 1965년, 박묵암 스님이 망경사 주지로 있을 때다. 김진정행 보살이 중심이 돼 돈을 모아 비석을 세웠다. 비각의 글씨와 비석의 글씨는 당시 월정사 조실로 있던 탄허 스님이 썼다. 경전을 우리말로 쉽게 풀이했던 불교계의 대표적인 학승이었고 '한국전쟁 예언' '일본 열도 침몰론' 등 '예언가'로도 널리 알려진 스님이다.
비석 앞면에는 '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라고 쓰여 있다. 비문 내용은 '단종께서 승하하신 후 태백산 산신령으로 화신하셨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이야말로 널리 중생을 이롭게 하심이 항하의 모래알만큼이나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중략)청신녀 김진정행의 모연으로 재물을 모아 비석을 세우고 공양을 올린다.(중략) 단기 4298년(서기 1965년) 4월 15일'이다.
강원도 영월에는 '살아서 추익한, 죽어서 엄흥도'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전 한성부윤 추익한이 '태백산 산신령 단종'과 관련 있는 인물이다.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 유배되자 추익한은 태백산의 머루와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했다고 한다. 어느 날 진상하러 영월로 가는 꿈을 꿨는데 수라리재에서 곤룡포 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가는 단종을 만나는 꿈이었다. "대왕마마,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추익한이 물으니 단종이 "태백산으로 가는 길이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상하게 여긴 추익한이 영월로 가보니 단종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 이후 이 일대 민간에서는 단종이 태백산 산신령이 됐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해마다 음력 9월 3일에는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산신령으로 모시는 제사를 지낸다.
그래서인지 태백산 주변에는 산신령이 된 단종을 모시는 사찰이나 신당이 여럿이다. 망경사 산신각에는 단종, 단군, 산신령을 같이 모신다. 당골주차장에 있는 성황당에서는 산신령이 된 단종을 모시고 제사를 지낸다. 단종은 1452년 12세 때 왕위에 올랐으나 1년 만에 일어난 계유정난으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실권을 빼앗겼다.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1455년) 상왕으로 있다가 영월 청령포로 유배돼 4개월 만에 죽음을 맞은(1457년) 단종의 슬픈 이야기는 민간에 숱한 설화를 남겼다. '태백산 산신령'이 된 단종, 단종비각도 이런 민간의 추모 분위기가 만들어낸 현장이다. 이와 함께 태백산에서는 단군성전, 태백산을 지키는 돌장승도 있어 여느 산과는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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