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르포]10년째 5% 성장…인도네시아 경제의 비밀 '다운스트리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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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인도네시아(인니) 통계청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을 발표했다. 결과는 5.11%. 세계 경제가 고금리와 지정학적 긴장 속에서 흔들리는 상황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인니 입장에서는 전혀 놀라운 결과가 아니었다. 인니 경제는 이미 10년 넘게 매년 5% 안팎의 성장률을 유지해 왔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발생한 2020년을 제외하면 마치 수학 공식처럼 꾸준히 성장을 지속한 것이다.


이같이 안정적인 성장률은 동남아시아에서도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태국은 정치적 불안 속에서 장기 저성장에 머물러 있고, 베트남은 고성장을 구가 중이지만 변동성 역시 큰 편이다. 반면 인니는 급등락 없이 꾸준히 5% 내외의 성장 궤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러한 성장 흐름이 2024년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 장성 출신인 그는 강경한 낡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국제사회는 군부의 급부상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에 부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경제성적표는 예상과 다르다. 인니 경제는 여전히 5% 수준의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한 것이다.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경제

인니 동쪽 변방에 술라웨시섬 모로왈리(Morowali)라는 지역이 있다. 작은 어촌이었던 이 섬은 지금은 전 세계 최대 니켈 산업 단지 중 하나로 변모했다. 수십 개의 제련 공장과 배터리 공장이 들어서면서 수만 명의 노동자가 모여들었고, 거대한 산업 도시로 바뀌었다. 인니 정부가 말하는 '다운스트리밍(Downstreaming)' 전략이 실제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가 됐다.


산업에서 말하는 다운스트리밍은 자원을 원료 상태로 수출하는 대신 자국 내에서 가공과 제조를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말한다. 쉽게 말해 광석을 그대로 파는 것이 아니라, 그 광석으로 배터리나 자동차 같은 제품까지 만들어 산업을 키우겠다는 것. 때론 자원민족주의로 불렸던 폐쇄적인 정책이지만, 트럼프 시대에는 더 이상 이상한 전략이 아니게 됐다. 인니의 경우 그 중심에는 세계 최대 생산량을 자랑하는 니켈이 있다.(이외에 주석과 팜오일 전 세계 1위, 석탄·보크사이트·금은 3~4위 정도의 자원 대국이다)

니켈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로, 에너지 전환 시대의 전략적 자원이다. 과거 인니는 니켈 광석을 채굴해 수출하는 전형적인 자원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2020년 조코 위도도 정부는 니켈 원광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대신 외국 기업들이 인도네시아 내에서 제련과 가공을 하도록 유도했다. 당시 유럽연합(EU)은 이 정책이 자유무역 원칙을 위반한다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고, 실제 WTO는 이 조치가 규정 위반이라 판결했다. 그러나 인니 정부는 물러서지 않았다. 단순한 자원 수출로는 장기적인 산업 발전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결과는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났다. 글로벌 광산 기업과 배터리 기업들이 인니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다. 중국 기업들은 니켈 제련소를 건설했고, 한국의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도 배터리 생산을 위한 투자에 나섰다.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 전경.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인도네시아 공장 전경. 현대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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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기업들의 투자는 다운스트리밍 전략의 상징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현대차는 2022년 동남아 최초의 전기차 생산 공장을 자카르타 인근 브카시에 완공했고, LG에너지솔루션과 현대차는 약 11억달러 규모의 배터리 합작 공장도 구축했다. 니켈 채굴에서 배터리, 전기차 생산까지 이어지는 공급망 일부가 인도네시아 안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인니의 니켈 관련 수출 규모는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는 단순한 수출 증가라기보다 산업 구조 변화에 가깝다.


원료를 수출하던 국가가 산업 생산을 담당하는 국가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전략이 특정 정권의 정책에 머무르지 않고 국가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코 위도도 정부가 시작한 다운스트리밍 정책은 프라보워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오히려 니켈뿐 아니라 보크사이트, 구리 등 다른 자원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자원을 파는 나라에서 산업을 만드는 나라로

이러한 정책 연속성은 인니 경제 안정성의 중요한 요인으로 평가된다.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정권 교체가 경제 정책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정권이 바뀌어도 핵심 산업 전략이 유지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일정한 정책 신뢰성을 제공한다.


결국 인니 경제의 특징은 '빠른 성장'보다 '지속 가능한 성장'에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풍부한 자원, 그리고 이를 산업으로 연결하려는 정책이 결합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전 세계가 공급망 재편과 산업 전략 경쟁에 들어간 지금, 인도네시아의 선택은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 자원을 단순히 수출하는 국가에서 자원을 통해 산업을 구축하는 국가로의 전환. 인니의 5% 성장은 바로 그 변화의 방향을 의미하는 숫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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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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