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건건]경찰이 주저했던 살인범의 신상 공개
서울 강북구 모텔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은 범행의 잔혹성과 반복성 때문에 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다. 피해자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피의자 김소영의 신상이 공개되면서 사건은 또 다른 논쟁을 낳고 있다. 경찰 단계에서는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열리지 않았지만, 사건이 검찰로 넘어간 뒤 검찰이 별도의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제도적으로는 절차가 존재했지만, 왜 경찰 단계에서는 심의가 열리지 않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현행 법체계에서 피의자 신상 공개는 중대한 강력범죄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은 범행의 잔혹성, 피해의 중대성, 증거의 충분성, 재범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상 공개 여부를 판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은 경찰 또는 검찰이 구성하는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이뤄진다. 외부위원이 포함된 위원회가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도록 한 이유는 신상 공개가 갖는 무게 때문이다. 아직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사실상 사회적 낙인을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절차적 정당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문제는 제도의 운영 방식이 사건마다 달라 보인다는 점이다.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에서는 경찰이 심의위원회를 열지 않았고, 검찰 단계에서 위원회가 개최돼 신상 공개가 결정됐다. 결과적으로는 법이 허용한 절차 안에서 공개가 이루어졌지만, 왜 동일한 법적 기준이 수사 단계마다 다르게 적용됐는지는 설명이 필요하다. 경찰 단계에서 심의가 열렸다면 동일한 결론이 나왔을지, 아니면 판단이 달라졌을지조차 확인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다. 법률은 경찰과 검찰 모두 위원회를 열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 언제 심의를 개최할지에 대한 기준은 비교적 넓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결국 위원회를 열 것인지 자체가 기관의 판단에 맡겨지는 구조다. 이는 곧 사건에 따라 심의 절차가 생략되거나 뒤로 미뤄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북 사건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연쇄살인이라는 중대한 범죄가 발생했음에도 경찰 단계에서는 신상 공개 심의가 열리지 않았다. 이후 검찰 단계에서야 위원회가 열려 신상 공개가 결정됐다. 결과적으로 공개는 이뤄졌지만, 그 과정은 일관된 절차라기보다 사건의 진행 상황에 따라 뒤늦게 작동한 제도처럼 보인다.
이런 구조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 어떤 사건에서는 경찰 단계에서 빠르게 신상이 공개되는 반면, 어떤 사건에서는 심의가 열리지 않다가 검찰 단계에서 뒤늦게 공개되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시민들은 공개 기준이 무엇인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제도가 동일한 기준과 절차로 운영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신상 공개 결정 자체도 논란의 대상이 된다.
신상 공개는 강력한 권한이다. 범죄 예방과 공공의 안전이라는 목적을 갖지만 동시에 피의자의 인권과 무죄 추정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는 언제나 '누가, 언제, 어떤 기준으로' 그 결정을 내리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절차가 흔들리면 결정의 정당성 역시 흔들린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배탈인 줄 알고 지사제로 버텼는데…알고 보니 30...
강북 모텔 연쇄살인 사건에서 검찰이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공개를 결정한 것은 법적으로 가능한 절차였다. 결국 이 사건은 신상 공개의 필요성보다,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가 언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도적 기준이 얼마나 분명한지 되묻게 했다. 제도의 신뢰는 여론이 아니라 절차에서 만들어진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