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주 아주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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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불안정한 국제 질서 속에 놓여 있다. 이란에서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과 가자지구 충돌 등 지정학적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제 경쟁의 양상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오늘날의 경쟁은 군사력만이 아니라 기술과 산업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칩 전쟁(Chip War)'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로 반도체와 첨단기술을 둘러싼 경쟁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로 떠올랐다.


이러한 기술전쟁 시대에 산업 경쟁력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산업체 자체의 연구개발(R&D)은 물론, 장기적으로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대학 교육'과 '기초 및 응용연구'다. 반도체의 HBM과 D램, 스마트폰과 가전, 모빌리티와 에너지, 바이오 등 오늘날 한국 경제를 이끄는 산업분야 역시 고급 인재와 R&D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이런 의미에서 '대학 경쟁력이 곧 국가 경쟁력'이라는 사실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그러나 최근의 대학 정책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대학을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수단으로만 바라보거나, 대학이 추구하는 세계적 역량 결집보다는 각종 규제를 도외시한 채 현실에 머무르는 식이다. 지역 균형 발전이 중요한 과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학의 발전을 단순히 지역 정책의 도구로 접근하는 방식이 과연 이러한 엄중한 기술 패권 시대에서 지속 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학의 경쟁력 확보와 발전은 그 자체의 목표와 가치 속에서 자율성이 존재할 때 가능하다.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해 대학의 자율성을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자율성의 점진적 확보와 고등교육에 대한 과감한 정책적 투자다. 과거 미국의 대학들이 고등교육 특별회계 확대와 연구비 투자 증대 및 규제 완화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기르는 구심점으로 전환된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대학을 관리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국가경쟁력을 창출하는 핵심 기관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 스스로의 혁신도 필요하다. 대학이 제 역할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정책 환경이 마련된 상태에서 각 대학은 연구중심 대학으로서 고급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확대하며 연구성과를 지식재산권과 창업으로 연결하는 혁신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반도체와 바이오, 인공지능(AI)과 같은 전략 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구중심 대학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연구중심이 아닌 대학은 직업교육과 전문기술 교육, 지역산업과 연계된 인력 양성에 집중할 수 있다. 동시에 평생교육 기능을 강화해 다양한 연령대가 지속해서 배우고 새로운 역량을 개발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지역 소멸에 대응할 수 있다.


대학 정책은 획일적인 구조가 아니라 각 대학의 기능과 강점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연구 중심 대학의 육성, 전략 산업 인재 양성, 평생교육 체계 구축, 아시아의 우수 학생들이 모여드는 교육 허브로의 도약 등이 그 핵심이다. 이를 위한 규제 완화와 재정투자는 필수적이다. 대학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정책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 대한 투자다. 지금 대한민국이 대학에 대해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산업 경쟁력과 국가발전의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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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주 아주대 총장


오주연 기자 moon17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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