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시대 재테크]AI 버블, 그리고 전쟁: 2000년과 2008년이 겹쳐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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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다시 익숙한 장면 앞에 서 있다. 기술 혁신이 거대한 낙관을 낳고, 그 낙관이 자산 가격을 끌어올린 뒤, 예상치 못한 충격이 금융시장을 흔드는 장면이다. 2000년의 닷컴버블,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지금의 인공지능(AI) 열풍을 나란히 놓고 보면 하나의 공통된 패턴이 드러난다. 기술은 실제였지만, 자산 가격은 언제나 과도했다. 그리고 과도함은 외부 충격을 만났을 때 해소됐다.


2000년 닷컴버블은 기술 낙관이 만들어낸 대표적 사례였다. 인터넷은 실제로 세계 경제의 구조를 바꾸고 있었지만, 시장은 그 변화를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가치로 반영했다. 기업의 수익 모델은 불확실했지만 주가는 폭등했고, 결국 거품은 나스닥 붕괴라는 형태로 터졌다. 그러나 당시 위기는 금융 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리지는 않았다. 레버리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 위기는 전혀 다른 성격이었다. 그 중심에는 주택시장과 금융 시스템이 있었다. 낮은 금리와 신용 확대가 결합하면서 미국 주택 가격은 장기간 상승했고, 그 과정에서 모기지 대출은 주택저당증권(MBS)과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구조화 상품으로 금융시장 전체에 퍼졌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은행의 자산이 동시에 무너졌고, 금융 시스템 자체가 흔들렸다. 2000년이 '기대의 버블'이었다면, 2008년은 '신용의 버블'이었다.


지금의 상황은 이 두 가지 구조가 동시에 겹치는 모습에 가깝다. AI 혁명은 분명 실재하는 기술 변화다. 데이터센터, 그래픽처리장치(GPU), 고대역폭 메모리(HBM) 같은 인프라 투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거대 기술 기업들은 막대한 자본지출을 통해 신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 확대가 금융 구조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레버리지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사모대출, 즉 프라이빗 크레디트 시장이다. 은행 규제가 강화된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급성장한 이 시장의 규모는 약 1조8000억달러에 이른다. 블랙스톤, 아폴로, 블루아울 같은 대체투자 운용사들이 기업 대출을 공급하며 은행 밖에서 거대한 신용 시스템을 형성했다. 특히 기술 기업과 소프트웨어 기업에 대한 대출 비중이 높다는 점은 AI 산업과 금융시장이 예상보다 밀접하게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의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을 넘어 에너지 공급망의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전략적 요충지다.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가는 120달러 이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유가 상승은 단순히 에너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인플레이션의 문제로 이어지고, 인플레이션은 금리의 문제로 이어진다. 전쟁으로 인해 물가상승 압력이 다시 커진다면,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계획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시장 금리가 상승하면 높은 밸류에이션을 가진 성장주가 가장 먼저 압박을 받는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AI 산업은 금리 상승에 매우 취약하다.


이때 기업의 현금 흐름이 악화하면 사모대출 시장의 부실 위험이 커진다. 최근 일부 대형 프라이빗 크레디트 펀드에서 환매 요청이 증가하고 있다는 신호는 이런 우려를 반영한다. 기업 대출 부실이 확산한다면 신용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이는 다시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 된다.


지금 세계 경제가 마주한 상황은 단순한 기술 버블도, 단순한 지정학 위기도 아니다. 기술 혁신, 신용 확대, 그리고 전쟁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동시에 얽혀 있는 복합 구조다. 2000년의 기술 낙관과 2008년의 신용 구조가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만나는 순간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시장의 균형이 빠르게 흔들릴 수 있다. 특히 한국과 같은 개방경제에서는 그 영향이 더욱 크게 나타난다. 유가 상승은 원화 약세와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금리 상승은 반도체 중심의 성장주 밸류에이션을 압박할 수 있다. 코스피 역시 글로벌 금융 변동성의 영향을 피하기 어렵다.


역사를 돌아보면 금융위기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시작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통된 특징은 있다. 새로운 기술이 낙관을 만들고, 그 낙관이 신용을 통해 증폭되며, 예상치 못한 충격이 그 구조를 흔든다는 점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바로 그 세 가지 조건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계선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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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익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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