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UAE 전세기 노쇼 53명의 허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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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기) '노쇼'라니 너무합니다. 가고 싶은 사람들의 기회를 빼앗았네요. 노쇼한 사람들에겐 페널티가 필요합니다." 지난 8일 '아랍에미리트(UAE) 한인회'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내용이다.


UAE를 비롯한 중동은 전쟁의 공포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군부대 주변은 물론이고 호텔과 공항 등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화염에 휩싸인 건물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한 국내 가족들은 애가 탈 수밖에 없다.

현지 교민의 안전 확보, 단기 체류자의 무사 귀국을 위해 정부 당국은 백방으로 노력했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니, 고국에서도 한마음으로 기원했다. 그렇게 UAE에 긴급하게 전세기를 띄울 수 있었지만, 일부 탑승 예약자의 '노쇼(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음)'로 빛이 바랬다. 전세기 탑승자 선정 과정을 살펴보면 더 안타깝다.


외교부는 지난 7일 UAE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에게 8일 오후 12시(현지시간) 아부다비~인천 전세기의 탑승 신청을 받았다. 신청자 모두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중증환자, 장애인, 임산부, 고령자, 영유아와 필수 동행 인원들을 '우선배려 대상자'로 정했다. 전세기 탑승 신청을 고민하던 일부 체류자는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신청을 포기했다.

이렇게 추려진 285명의 탑승객 명단은 외교부와 UAE 대사관 홈페이지, UAE 한인회 등 각종 온라인 채널에 공지됐다. 외교부에선 탑승객들에게 개별 연락도 취해 탑승 여부를 확인했다. 그런데 탑승 당일, 206명만이 아부다비 공항에 나타났다. 53명은 취소 연락도 없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각각 1300여명이 UAE 상황과 정보를 교류하는 'UAE 한인회' 'UAE 항공정보 교류방' 등의 오픈채팅방에선 "노쇼 명단을 공개해 망신을 줘야 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전세기 이용 금액을 후불제가 아닌 선불제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로 외교부가 공지한 내용을 보면 전세기 이용 비용은 '개별 사후 청구'가 원칙이다. 전세기 탑승 전 공항 현장에서 탑승객들에게 '사후 비용 청구 동의서'를 제출받기로만 돼 있을 뿐 전세기 탑승 신청 단계에선 예약금 등 비용을 보전할 장치가 없다. 경제적으로 손해 볼 것이 없으니 노쇼를 쉽게 선택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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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기 신청 당시 많은 이가 절박한 상황이었다. 딱한 사정이 있는 이들부터 먼저 탑승하도록 자리를 양보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53명의 노쇼는 씁쓸하기만 하다. 다른 사람의 배려와 양보를 토대로 얻은 기회, 그것도 전쟁의 혼란을 벗어날 기회를 너무나 허망하게 날리고 말았다.


문혜원 기자 hmoon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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