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 시행 첫날 대기업도 '흔들'…'과잉투쟁' 삼성 노조에 산업계 초긴장
투쟁 수위 높이는 삼성 노조
노란봉투법 시행 맞물려 긴장 확산
하도급 구조 속 생산 차질 우려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9일 '5월 총파업'을 목표로 쟁의권 확보를 위한 찬반 투표를 시작한 데 이어 연일 사측을 겨냥한 투쟁 수위를 높이고 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회사를 위해 근무하는 자가 있다면 명단을 관리해 추후 조합과 협의가 필요한 강제 전환배치나 해고에 있어 이들을 우선 안내할 것"이라며 파업 불참자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겠다는 식으로 압박했다. 또 사측에 협조하는 직원들을 신고하면 포상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사무실을 24시간 점거하는 식의 세부 투쟁 계획도 공개했다.
노조는 "파업 시 회사는 10조원의 손실을 보지만 직원들의 손해는 4000억원"이라는 자체 계산 논리를 제시하며 파업 동참 여론을 키우고 있다. 이러한 행태를 두고 재계와 노동계 일각에서는 정당한 권리 행사를 넘어선 명백한 '과잉 투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사측에 협조적인 직원들을 범죄자 취급하며 신고 포상을 거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사무실을 24시간 점거하는 등의 세부 계획은 현대적 노사 관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례적이고 위압적인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10일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으로 불리는 노동조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산업계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책임이 강화되는 등 사용자와 노동쟁의의 범위는 넓어졌지만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는 제한되게 됐다. 파업에 대한 책임을 묻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노사 분쟁 환경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전례 없는 강경 투쟁이 분출된 배경에는 이날부터 시행된 노란봉투법의 영향이 크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제한되면서 노조가 법적 책임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무실 점거'나 '블랙리스트 관리'와 같은 모험적인 투쟁 방식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이러한 노조의 행태가 명백한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파업 불참자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예고하며 참가를 강요하는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이자 형법상 '협박 및 강요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동투쟁본부 측은 "노조가 쟁의 기간을 선포하고 근로 중단을 명령하면 조합원들은 조합 지침을 따라야 하는데 그룹장과 팀장의 근무 강요가 있을 수 있다"며 "부당 노동 행위와 지배 개입으로부터 조합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사무실 점거 등은 최후의 수단이며 파업을 진행하는 다른 기업 노조들도 유사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당면한 노사 갈등의 긴장은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굳어진 자동차, 조선, 건설 등 업계에서는 당장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원청과 수십, 수만 곳의 부품 협력사가 협업하는 자동차 업계에선 하청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공급망 파업으로 번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조선·철강 업계 역시 독과 고로 등 핵심 설비 점거가 발생할 경우 생산 중단에 따른 손실 규모가 크게 증가할 수 있다. 원청을 상대로 직접 고용이나 처우 개선 요구 등 분쟁이 길어질 수 있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법률) 시행을 하루 앞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원청교섭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기업들은 특히 전기차, 로봇 등 신산업 투자나 구조조정 과정까지 쟁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노사 갈등이 경영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공장 자동화 과정에서 로봇,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이 노동자의 지위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파업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그룹 노조는 지난 1월 자사 공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노사 합의 없이 들여올 수 없다며 반발한 바 있다.
실제 노동계는 이날 노란봉투법 시행을 계기로 원청을 상대로 한 대규모 교섭 요구와 투쟁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900여개 사업장에서 14만명 규모의 조합원이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1월부터 현대자동차, 한화오션, 현대제철, 현대모비스 등 주요 원청 기업에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계기로 산별 교섭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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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중심으로 단체교섭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식으로 대응에 나섰지만, 당장 대처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분위기다. 박종철 우리경영연구원장은 "법 조항에 대한 해석이 애매한 부분들이 있어 법원에서 첫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혼란이 예상된다"며 "시행 초창기에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관망세를 보일 것"이라고 밝혔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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