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감독 공동 연출
마사페르 야타 강제 퇴거의 아픔 기록
진영 논리 걷어내고 보편적 인류애로 접근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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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착기가 오랜 삶의 터전을 가차 없이 부순다. 다큐멘터리 영화 '노 어더 랜드'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마사페르 야타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군의 강제 퇴거 작전을 전한다. 팔레스타인 활동가 바젤 아드라와 이스라엘 저널리스트 유발 아브라함이 국적과 신분의 벽을 넘어 카메라를 들고 폭력의 현장을 증언한다.


마사페르 야타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수 세대 동안 동굴과 임시 텐트를 오가며 고유의 공동체를 유지해온 삶의 터전이다. 비극은 이스라엘군이 일방적으로 이 일대를 사격 훈련장으로 지정하면서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군사 훈련을 명목으로 원주민들을 하루아침에 불법 거주자로 규정했다. 이스라엘 대법원도 2022년 주민들이 제기한 강제 퇴거 취소 소송을 기각하며 군에 원주민 1000명 이상을 합법적으로 영구 추방할 권리를 부여했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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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괴롭힘은 'C구역'을 장악하기 위한 치밀한 영토 확장 전략이다. 서안지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995년 체결한 오슬로 제2차 협정에 따라 세 구역으로 나뉘었다. 그중 면적의 약 60%를 차지하는 C구역은 이스라엘이 행정과 군사 통제권을 모두 독점한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건축과 생활을 엄격하게 통제한다. 반면 자국민을 위한 불법 정착촌은 끊임없이 확장한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빈 땅을 확보해 사실상 영토를 병합하려는 수순이다. 이스라엘군은 굴착기를 동원해 집과 학교, 진료소를 부수고 식수 파이프를 끊어 생존 기반 자체를 말살한다. 불법 유대인 정착민들의 폭력은 철저히 묵인하면서, 방어할 무기조차 없는 팔레스타인 원주민들의 일상만 무참히 파괴한다.


아드라와 아브라함은 긴박함을 전달하는 핸드헬드(Handheld) 촬영으로 관객을 탄압의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간다. 폭력을 일상으로 견디는 자와 제약 없이 자유를 누리는 자 사이의 극단적 불평등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 치밀한 교차 편집을 더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비를 극대화하며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을 안긴다. 투박하지만 집요한 시선으로 단순한 관람을 허락하지 않고, 스크린 밖의 관객마저 회피할 수 없는 역사의 목격자로 세운다.

영화 '노 어더 랜드'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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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고발의 이면에는 보편적인 인류애가 자리한다. 정치적 진영 논리나 복잡한 중동 분쟁의 시시비비를 따지기보다, 고향을 잃어가는 팔레스타인 청년과 그 곁을 지키는 이스라엘 이방인의 끈끈한 연대에 집중한다. 거대한 국가 폭력 앞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행보로 이념을 초월한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생존과 인권, 우정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가치를 탐구하며 관객의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넓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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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움을 지키려는 이들의 처절한 기록은 국제무대에서 최고 영예로 이어졌다. 제7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97회 미국 아카데미시상식 등에서 다큐멘터리상을 거머쥐었다. 수상의 영광은 이내 정치적 공세와 살해 협박으로 되돌아왔다. 이스라엘 관료들부터 앞장서 아드라와 아브라함을 반유대주의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이러한 탄압은 오히려 전 세계의 이목을 마사페르 야타로 집중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파괴의 굴착기를 당장 멈추지는 못했으나, 침묵하던 국제사회에 묵직한 파열음을 내며 진상 규명과 변화를 향한 담론을 거세게 끌어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을 향해 연대하는 카메라가 지닌 진정한 힘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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