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검은 수요일'이 남긴 과제
사이드카·서킷브레이커의 역설
패닉 셀 극복…냉철한 판단을
전례 없는 공포가 대한민국 자본시장을 휩쓸었다. 지난 수요일(3월4일),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이라는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와 유가 폭등의 충격파는 한국 증시를 말 그대로 마비시켰다. 코스피 지수가 12% 넘게 폭락하며 2001년 9·11 테러 당시를 뛰어넘는 역대 최대 하락장을 연출했다. 개인투자자들의 계좌는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시장에는 탄식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증시의 붕괴를 막기 위해 등판한 것이 바로 사이드카(Sidecar)와 서킷브레이커(Circuit Breaker)였다. 증시의 과열과 폭락을 물리적으로 제어하기 위해 고안된 이 두 안전장치는 과연 이번 폭락장에서 제 역할을 다했을까.
먼저 등판한 사이드카는 증시의 1차 방어선이다. 선물 가격이 급변할 때 컴퓨터 알고리즘에 의한 대규모 프로그램 매매 호가를 5분간 정지시킨다. 이는 꼬리(선물)가 몸통(현물)을 거세게 흔드는 현상을 차단해 기계적인 매도 폭탄이 도미노처럼 시장 전체를 무너뜨리는 것을 막는 데 일정부분 기여했다. 하지만 이번 폭락장에서 확인했듯 그 한계는 명확했다. 프로그램이 아닌 공포에 질린 일반 투자자들의 투매 현상까지 묶어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개장 직후부터 울려 퍼진 사이드카 발동 소식은 현재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위험하다는 공식적인 경고음으로 작용했다. 이는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개인투자자들의 '패닉셀(Panic Sell)'을 부추기는 얄궂은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사이드카라는 1차 방파제마저 넘어서 버린 거대한 공포는 결국 최후의 보루인 서킷브레이커를 소환했다. 지수가 8% 이상 무너지자, 시장의 모든 주식 거래가 20분간 전면 중단됐다. 마치 전기에 과부하가 걸렸을 때 두꺼비집을 내려 대형 화재를 막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 강제적인 휴식 시간은 비이성적인 묻지마 폭락을 물리적으로 원천 봉쇄하고, 시장 참여자 전원에게 이성을 되찾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냉각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조치다.
문제는 서킷브레이커가 내포한 '자석효과(Magnet Effect)'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주가지수가 서킷브레이커 발동 기준치에 근접하기 시작하면, 투자자들의 머릿속에는 "곧 모든 거래가 묶여 당장 현금을 한 푼도 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지배하게 된다. 이 두려움은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앞다투어 주식을 던지게 하고, 결국 주가 하락 속도가 자석에 이끌리듯 더 가팔라지는 모순적인 상황을 연출한다. 실제로 이번 장에서도 서킷브레이커 발동 직전 시장에 쏟아진 어마어마한 매물 폭탄은 이 제도가 지닌 양날의 검과 같은 본질을 여실히 증명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번 사태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그 이후 펼쳐진 극적인 시장 흐름이다.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듯, '검은 수요일'의 극단적인 공포가 시장을 휩쓸고 간 직후 증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강한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드라마틱한 반등세를 연출했다. 과도한 불안감에 휩싸여 바닥에서 우량주마저 헐값에 던져버린 투자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뼈아픈 후회를 남긴 대목이다. 인위적인 셧다운이나 차가운 제도가 시장의 근본적인 펀더멘털이나 방향성까지 결정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시장이 스스로의 회복력을 통해 증명해 낸 셈이다.
이러한 폭락과 반등의 롤러코스터 장세는 우리에게 매우 무겁고 중요한 과제를 남긴다. 서킷브레이커가 부여한 20분의 정지 화면 속에서, 우리는 단순히 파란불이 켜진 계좌를 보며 막연한 공포에 떨 것이 아니라 거시적인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아야 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우려 속에서도 정유주나 해운주가 어떻게 반응할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방산 섹터가 어떻게 차별화한 방어력을 보여줄지 예측하며 기업의 내재 가치를 냉정하게 분석하는 옥석 가리기의 시간으로 삼았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무너져 내리던 증시를 다시 정상 궤도로 돌려놓은 것은 시스템의 강제 종료 버튼이 아니라, 과매도 구간을 정확히 인식하고 행동에 나선 시장 참여자들의 냉철한 이성이었다. 제도는 우리에게 찰나의 시간을 벌어줄 뿐, 그 뼈아픈 시간을 수동적인 방어가 아닌 능동적인 기회로 반전시키는 것은 오롯이 투자자 스스로의 객관적인 판단에 달려 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요동치는 폭락장 앞에서도 맹목적인 공포를 경계하고 중심을 잃지 않는 투자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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