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맥]이공계 살리기, R&D 복원에서 다시 길을 찾다
인재 양성·대학 혁신·거버넌스 개편 필요
2월20일 이재명 대통령은 카이스트(KAIST) 학위수여식에 참석했다. 졸업생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입장한 장면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국가적 존중의 상징이었다. 이날 이 대통령은 "단단한 이공계 안전망을 구축해 적어도 돈이 없어서 연구를 멈추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기초연구 예산 17% 이상 증액과 연구 생태계 복원 선언은 최근 몇 년간 위축된 연구 현장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의대 광풍'이라는 구조적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기초과학과 공학 인재의 파이프라인이 끊기면 반도체·배터리·우주항공·양자기술과 같은 국가 전략산업의 토대가 흔들린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 것은 지난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었다. 2023년 1만4900여개였던 기초연구 과제는 지난해 1만1800여개로 20% 이상 줄었다. 연구비는 소수 대형·글로벌 프로젝트에 집중됐고, 소액 과제의 폐지로 신진 교원과 지방 연구자의 최소한의 안전망마저 약화됐다. 이는 학문 다양성의 붕괴 징후로 볼 수 있다.
새 정부가 예고한 '기초연구 혁신방안'은 이러한 균열을 메우기 위한 기초적인 조치이다. 무너진 과제 수를 올해 1만5000개 수준으로 복원하고, 전임교원 수혜율을 55%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은 연구 저변을 다시 넓히겠다는 선언이다. 1억원 미만의 '풀뿌리 기본연구'를 A, B, C 영역으로 되살려 신진·중견·위기 연구자에게 숨 쉴 공간을 제공하고, 성과 지상주의 대신 Pass, Fail 평가와 상시 접수 체계를 도입하겠다는 구상 역시 연구 몰입도를 높이기 위한 변화다. 이는 '선택과 집중'에서 '생태계 복원'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산 복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저출산과 전문직 선호 현상 속에서 2040년 이공계 졸업생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석박사 과정 역시 위축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2030 과학기술 인재 전략'은 전 주기 패키지를 강조한다. 학부·대학원생 연구생활 장려금 확대, 박사 후 연구원의 제도적 지위 안정, 여성 과학기술인의 경력 단절 최소화, 정년 이후 석학 펠로십 제도 등은 인재 사다리를 촘촘히 잇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대학 혁신 또한 병행돼야 한다. 개별 과제 중심의 지원으로는 종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연구생태계대학' 블록 펀딩 모델을 통해 대학이 융·복합 연구 거점으로 기능해야 한다. 지역 거점 국립대를 연구중심대학으로 전환해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전략 분야별 10년 장기투자형 세계 수준 연구소를 정부, 대학, 산업이 공동으로 운영한다면 기초와 응용이 선순환하는 구조가 가능하다.
거버넌스 개편도 중요하다.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획예산처에 흩어진 인재·연구 예산을 통합 관리하고, 목표·예산·성과를 일관되게 설계해야 한다. 기초연구와 인재 지원은 단순한 예산 항목이 아니다. 의대 쏠림과 R&D 축소로 생긴 균열을 메우고, 2030년 이후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을 키우는 국가 생존 전략이다.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울려 퍼진 "연구비 걱정 말라"라는 약속이 제도와 문화의 변화로 이어질 때, 우리는 과학기술 강국의 길을 다시 열 수 있다. 이공계를 살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우리가 미래 산업을 선도할 것인지, 기술 종속의 길로 밀려날 것인지 결정짓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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