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 2%대 물가 끝…"이러다 스태그플레이션 오나"
미·이란 전쟁 후 주요 산유국 생산 줄어
겨우 안정세 찾은 소비자 물가 상승 압력↑
가격 통제하면 공급 감소, 암시장 등 우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면서 어렵게 붙잡아둔 '2%대 물가'에 빨간불이 켜졌다. 6개월 연속 안정세를 보이던 물가 지표가 유가 급등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이번 충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더 클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전쟁 장기화로 경기침체 속에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인 2.0% 달성도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과 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주유소 기름값도 매일 상승하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 주유소에 5일(오른쪽사진)에 비해 하루만인 6일 휘발유는 20원, 경유는 50원 오른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2026.03.06 윤동주 기자
국제 유가 심리적 저항선 100달러 돌파…2%대 물가 상승률 '흔들'
9일(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국 시간 기준 이날 오전 7시 국제 유가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모두 배럴당 100달러를 넘겼다. WTI와 브렌트유가 '심리적 저항선'인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이후 처음이다.
2월 말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 이후 중동 주요 산유국들이 생산량을 줄이면서 국제 유가가 급등했다. 석유 핵심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된 데다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면서 기름값은 한동안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유가 급등에 겨우 안정세를 찾은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직격탄을 맞을 위기다. 지난해 상반기 3%대로 고공행진하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국제 유가 하락과 정부 물가 안정 대책이 맞물리면서 하반기 2% 초반대로 진입했다. 올해 1·2월에는 두 달 연속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0%를 기록하며 순항하고 있었다. 설 연휴 영향으로 서비스 물가가 오르긴 했지만, 중동 사태 영향을 받기 전이라 국제유가 내림세 덕분에 석유류 가격이 2.4% 하락하며 전체 물가를 끌어내리는 효자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동발(發) 기름값의 급습에 3월 소비자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히 커졌다. 휘발유, 경유 등은 대체가 어려운 필수 소비재인 데다 전체 가계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소비자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두원 국가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최근 중동 상황으로 휘발윳값이 크게 상승했다"며 "3월 물가지표에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세라면 6개월간 이어온 2%대 물가 기조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유가가 오르면 주유소 기름값 상승을 시작으로 물류비와 운송비도 올라 산업 전반의 비용이 커지며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우 전쟁 당시 소비자 물가 상승률 5.1%…"충격 더 클 수도"
위기감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보다 더 크다. 당시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199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석유류 가격 상승이 물가를 주도했다. 휘발유·경유 가격은 ℓ당 2100원을 넘어섰고, 석유류 가격 상승률은 3월 31.6%에서 7월 35.2%까지 올랐다. 전문가들은 당시 석유류 가격 상승이 없었다면 전체 물가 상승률은 4~6%가 아닌 2~4% 수준에 머물렀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번 사태가 더 위험한 이유는 '공급망의 직접성' 때문이다. 2022년에는 러시아산 석유 금수에 따른 간접적 수급 차질이 문제였으나 이번에는 한국 수입 원유의 70%를 차지하는 중동발 공급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급등하면 올해 성장률 2.0%목표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한국 경제가 2.0%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은 지난 3일 과거의 '오일 쇼크' 같은 사태로 치닫는 시나리오에서 연평균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으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정부는 올해 전망을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62달러로 두고 짰는데 이미 10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 상승이 물가 불안을 자극하면서 경기 둔화 속 물가는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 '초긴장'…전방위적 공세에 30년 만에 '최고가격제'까지 소환
이에 정부는 간신히 잡은 물가의 고삐가 풀릴세라 초긴장 상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각 부처가 주요 업종을 상대로 전방위 가격담합 등 불공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다. 국제유가 상승을 핑계로 전국 주유소에서 소매가를 대폭 올리자 30년 만에 석유 최고가격 지정제 카드를 꺼내기도 했다. 전국 주유소 기름값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ℓ당 2000원' 문턱에 섰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8일 기준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은 L당 1918원, 휘발유는 1895원을 기록했다. 2주 전과 비교하면 각각 327원, 205원 오른 가격이다.
최고가격제는 석유 및 석유대체류 사업법 제23조에는 '국민 경제의 안정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산업부 장관이 석유정제업자·석유수출업자 또는 석유판매업자의 판매가격 최고액을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위반 시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초과 수익은 모두 환수되는 비상조치다. 1970~80년대 1·2차 오일쇼크 때를 제외하고 최고가격제가 적용된 적은 없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준비는 거의 마쳤고 시장을 좀 더 지켜보며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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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조치가 실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기름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조치이긴 하지만 가격 통제가 시장 왜곡을 부를 수 있어서다. 팔수록 손해라면 공급자가 판매를 기피하는 데 따른 '공급 절벽'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가격 통제가 시행될 경우 음성적 거래가 늘어날 수 있고 이익을 낼 수 없다고 판단되면 판매 자체가 중단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면서 "이 경우 공식 시장은 위축되고 오히려 불법 거래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동우 기자 dw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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