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복합충격' 대비 비상경제점검회의 소집
"최악 상황 염두, 비상한 각오로 선제 대응해야"
"에너지 대체 공급선 발굴" 지시
"주유소 담합·매점매석 등 엄정 제재"
"시장 체질 개선 기회로도 활용" 당부

이재명 대통령이 중동 지역 위기 심화에 대응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의 신속한 도입과 100조원 규모 시장안정 프로그램의 적극 확대 검토를 지시했다. 금융·외환시장 변동성과 에너지 수급 불안을 동시에 관리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자본시장 체질 개선 개혁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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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은 9일 오전 청와대 본관에서 주재한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중동 지역 위기가 심화되면서 대내외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며 "향후 전개 양상을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정부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비상한 각오로 선제적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위기는 언제나 힘들고 어려운 서민들에게 더 큰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국민들이 겪는 일시적 고통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달라"라면서 "위기는 곧 기회다. 같은 상황을 겪더라도 어떻게 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다음이 결정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금융·외환시장 대응을 먼저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혈맥은 금융"이라며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과거 태세에서 벗어나 숨겨진 위험까지 점검해 대응 방안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필요한 경우에는 100조원 규모로 마련돼 있는 시장안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정부와 중앙은행 차원의 조치도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본시장 개혁 필요성도 거듭 꺼내 들었다. 이 대통령은 "어려운 시장 환경을 악용해 부당이익을 취하려는 세력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한다"며 "이번 상황을 계기로 우리 자본시장 체질 개선을 위한 개혁 과제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위기 국면을 단순 방어에 그치지 않고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지다.

에너지 수급 대책과 관련해서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공급선 다변화를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수급과 가격 불안 상황이 엄중한 만큼 이에 상응하는 비상한 대책도 필요하다"며 "전략적 협력 국가들과 공조해 호르무즈 해협을 경유하지 않는 대체 공급선을 신속하게 발굴하면 좋겠다"고 했다.


국내 석유 유통시장에 대한 강한 단속 방침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유사와 주유소의 담합, 매점매석, 사재기 등 불법행위를 철저히 단속하라며 "위반할 경우 그로 인해 생길 이익의 몇 배에 해당하는 엄정한 제재를 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 급등에 대응한 직접 가격 통제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제품에 대해서는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해야겠다"고 밝혔다. 중동 위기가 국내 기름값과 생활물가를 밀어 올릴 가능성이 커진 만큼, 시장 단속을 넘어 제도적 가격 안정 장치까지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에너지 가격 상승이 서민층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전방위 대책 마련을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한 물가 부담은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돌아간다"며 "세심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이번 중동 지역 위기가 장기화할 경우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이 클 수 있으므로 전방위적 수단을 통해 철저하고 치밀하게 대비해 달라"라고 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 가능성…'중동發 복합충격' 대비 긴급회의
장 초반 코스피 급락, 매도 사이드카도 발동
원·달러 환율 1490원대서 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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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의 이번 회의 소집의 배경은 호르무즈 해협 통항 차질의 장기화다. 전 세계 원유·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0%를 담당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사실상 막힌 상태다. 이에 쿠웨이트석유공사(KPC)는 지난 7일(현지시간) 중동 전쟁으로 선적이 막히자 감산과 함께 '불가항력(포스 마주르·Force Majeure)'을 선언하고 석유 생산을 감축하기로 했다. 중동발 충격이 단순한 지정학 리스크를 넘어 전 세계 실물 공급망 변수로 번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날 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 재정경제부를 포함해 산업통상부, 기후에너지환경부, 기획예산처, 농림축산식품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이 함께 들어오는 것은 복합 충격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읽힌다. 에너지 수급과 도입선 확보는 물론 정유·주유소 가격 전가 속도, 담합·사재기 가능성, 농축산물·가공식품 가격 파급, 세제 지원까지 한 테이블에서 다룰 가능성이 크다.


이 자리에서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이 '실물경제 영향 점검 및 범정부 대응방향'에 대해,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석유가스 수급 및 가격안정화 방안'에 대해 보고했다. 이어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금융시장 상황 점검 및 대응방안'을 공유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범부처를 모두 한자리에 모아 현재 대응 상황을 점검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관계 부처와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하기 위한 자리"라고 설명했다.


국제유가는 이미 중동 사태의 충격을 본격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이날 오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대로 치솟았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기준 배럴당 107.54달러를 기록했다. WTI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2022년 7월 이후 처음이다. 브렌트유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국제 유가가 중동 사태의 장기화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중동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24시간 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강훈식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6일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고 아랍에미리트(UAE)와 협의를 통해 원유 600만배럴을 긴급 도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필요 없는 UAE 대체 항만에 한국 국적 유조선 2척을 접안시키고, 항만 보관 원유 400만배럴을 실어 오는 방식이다. UAE 공동 비축 물량 200만배럴도 필요하면 추가 활용할 수 있도록 협의를 마쳤다.


그러나 당장 문제는 비축유 고갈이 아닌 소비자가 체감하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다. 이날 오전 기준 오피넷 집계상 전국 주유소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896.24원, 경유는 1918.60원까지 올랐다. 서울은 휘발유 1947.32원, 경유 1968.09원으로 더 높다. 최근 하루 수십 원씩 뛰던 상승세는 다소 둔화했지만, 국제유가 변동이 통상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주유소 가격에 반영되는 만큼 더 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앞서 이 대통령 지시로 정부가 최고가격 지정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유가 상승이 생활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예의 주시해야 한다. 2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2.0% 상승했고, 식료품·에너지를 제외한 근원물가는 2.3%, 생활물가는 1.8% 올랐다. 2월 지표만 놓고 보면 물가가 관리 범위를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유가 급등은 이 수치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만큼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3월 이후에는 유류비 상승이 물류비와 가공식품, 외식, 축산물 등 가격으로 번질 수 있다.


금융시장 변동성에 대한 우려도 크다. 코스피는 지난 4일 중동 전쟁 충격으로 12.06% 급락한 5093.54에 마감하며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05.8원까지 치솟아 17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밀리기도 했다. 이날도 국제유가가 다시 뛰고, 전황이 더 악화됨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16.6원 오른 1493.0원으로 출발해 1490원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코스피도 오전 장중 8% 이상 급락해 5096선까지 밀렸다. 개장 이후 오전 9시6분 쯤 코스피200선물지수의 변동으로 사이드카(프로그램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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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갈수록 심화하는 중동 전쟁 여파를 어떻게 선제적으로 막느냐에 맞춰질 전망이다. 정부는 비축분과 UAE 긴급 도입 물량으로 단기 공급 불안을 해소하는 한편 유가 급등의 소비자 물가 전가 속도를 늦추고 환율·증시 변동성을 관리하는 방향으로 대응 강도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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