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수익률 게임 매몰되면 기업 분석 뒷전
'대박의 환상' 아닌 '위험관리의 지혜' 절실

[시장의 맥]현기증 나는 증시, '수익률'보다 '위험관리' 강조해야 할 때
AD
원본보기 아이콘

최근 수개월간 주식시장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숨 가쁘게 치솟던 증시는 미국·이란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돌발 변수와 맞물리며 극심한 변동성 장세로 돌변했다. 3월6일 종가 기준으로 코스피는 6개월 전 대비 여전히 70%가량 높은 수준이며, 이 기간 주가수익비율(PER)은 15배에서 21배로 급등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번 하락장에서 유독 한국 증시의 낙폭이 컸다는 점이다. 이는 단기 급등과 풍부한 유동성 환경 속에서, 외부 충격에 외국인투자자들이 대규모 자산 매도를 단행한 결과로 풀이된다.


보다 우려스러운 점은 다수의 개인투자자가 여전히 시장에 대해 지나친 낙관론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란 전쟁 발발이 조정의 방아쇠(Trigger)로 작용하긴 했으나,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이미 인공지능(AI) 관련 업종의 버블 가능성과 과도한 기대감에 대한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최근 급등락의 이면에 기업의 펀더멘털과 수익성 전망에 대한 냉정한 분석보다는, 단순한 쏠림 현상에 기인한 추격매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되돌아볼 때다.

필자는 이번 학기 '금융경제학' 강의에서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모의투자 실습을 도입하며 한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목도했다. 대학생 대상의 모의투자 대회나 실습 평가가 오로지 '수익률' 단일 지표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점이다. 모의투자대회는 통상 1~2주 남짓한 짧은 기간에 누가 더 높은 수익을 냈는가로 순위를 매기다 보니, 가장 위험한 투기적 방식을 택해 '운 좋게' 대박을 터뜨린 학생이 최고 실력자로 둔갑하는 구조적 모순이 발생한다. 이에 필자의 강의에서는 수익률과 변동성을 동시에 통제하고 평가하도록 실습 모형을 전면 재설계해 시행하고 있다.


주식투자의 본질은 기업의 내재가치와 미래 현금흐름에 대한 합리적 전망에 있다. 단기 수익률 게임에 매몰되면 기업 분석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기술적 매매에만 치중하게 된다. 우리는 과거의 뼈아픈 교훈을 너무나 쉽게 망각한다. 2000년 초, 현재 기준으로 코스닥 지수가 3000포인트에 육박했던 버블의 광풍을 기억하는가. 1989년 코스피가 1000포인트를 돌파했다가 붕괴한 후, 실질가치 기준으로 그 지수 수준을 회복하는 데 무려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걸릴 줄은 아무도 예견하지 못했다. 쏠림 현상이 잉태한 거품은 꺼질 때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남긴다.

Advertisement

최근 한국 증시의 급등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AI 열풍에 따른 반도체 수요 급증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40% 가까이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및 관련 밸류체인의 수익성 개선 기대를 한껏 높였다. 여기에 수차례 이어진 상법 개정 논의로 이사회 책임과 자사주 관련 규제가 강화되며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감도 한몫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역시 우호적인 투자 심리를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진정 경계해야 할 문제는 이러한 상승세의 '지속 가능성'이다. 기초체력(Fundamental)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수급과 기대감만으로 쌓아 올린 주가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맹목적인 추격매수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며, 결국 공포에 질린 패닉셀(과매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막대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시장을 이탈해 수요 기반이 붕괴하고, 이것이 다시 장기적인 시장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경계해야 한다. 건강한 주식시장에서 수급을 이기는 것은 결국 기업의 실질적인 실적과 내재가치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대박의 환상'이 아니라 '위험관리의 지혜'다. 무위험 자산을 비롯해 시장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대체 자산을 적절히 편입해 분산투자를 실행해 온 투자자는 시장의 요동 속에서도 쉽게 뇌동매매에 휩쓸리지 않는다. 지난주의 극심한 롤러코스터 장세를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냉철하게 재조정해야 할 시점이다. 최우선 과제는 목표수익률을 낮추는 것이다. 자산을 어떻게 배분할지, 저변동성 종목을 어느 정도의 비율로 구성할지, 혹은 시장 하락에 대비한 헤지(Hedge) 수단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뇌하는 과정 그 자체가 곧 훌륭한 투자다. 장기투자가 미덕이라 하여 무작정 묻어두고 방치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다. 끊임없이 시장의 기류를 살피고 자산을 재평가하며, 새로운 정보와 변수들을 반영해 포트폴리오를 재조정(Rebalancing)하는 동태적 관리가 필수적이다.


정책 당국의 역할 또한 냉정한 시각에서 재정립돼야 한다. 특정 주가지수를 정책 목표로 내세우거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주가의 하방 경직성을 담보해 줄 것이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시장에 주어서는 안 된다. 금융시장의 선진화는 지수의 절대적 레벨이 아니라 시장 규율의 정상적 작동 여부에 달려 있다. 성장 동력을 상실한 한계기업은 자연스럽게 퇴출당하고, 그 자리를 혁신 기업이 채우는 자본시장의 신진대사가 원활해야 한다. 펀더멘털에 대한 객관적 평가 없이 단순히 "한국 시장이 저평가됐으니 당연히 올라야 한다"며 수요를 부추기는 행위는 지극히 위험하다.


한국 주식시장이 진정으로 매력적이고 건강한 투자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도 스스로 흡수하고 복원할 수 있는 '회복력(Resilience)'을 갖춰야 한다. 실체가 결여된 상승은 허구이며, 그 끝에 기다리는 급락은 필연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관건은 우리 기업들이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 능력을 입증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정부가 자본시장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대의 역할은, 주가 부양이 아니라 기업들이 마음껏 기술을 개발하고 혁신에 도전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조성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AD

곽노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전 한국금융학회장)


이기민 기자 victor.lee@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vertisement

오늘의 인기정보

AD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오늘의 인기정보

AD

오늘의 인기정보

AD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Advertisement

취향저격 맞춤뉴스

오늘의 추천 컨텐츠

AD

오늘의 인기정보

AD

맞춤 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많이 본 뉴스

AD
Advertisement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놓칠 수 없는 이슈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