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통합돌봄, 흔들리지 않는 첫걸음을 위해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에서 돌봄은 더 이상 일부 가정의 문제가 아니다. 요양병원과 시설에 오래 머무는 이들이 늘고, 가족의 부담은 한계에 이르렀다. '가능하면 끝까지 살던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는 당연하다. 통합돌봄은 병원·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돌봄의 축을 옮기는 정책적 전환이다.
3월 중 전국 시행을 앞둔 지역사회 통합돌봄 로드맵은 도입기-안정기-고도화기 세 단계로 나누어 추진된다. 1단계에서는 기본 틀과 전달체계를 만들고, 기존 보건의료·건강관리·장기요양·일상생활돌봄 서비스를 엮는 데 집중한다. 2단계에서는 대상자와 서비스를 넓히며, 지역 간 격차를 줄이고 3단계에서 노쇠 예방부터 재가 임종까지 이어지는 전 주기 돌봄체계를 완성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돌봄통합지원법이 노인과 함께 장애인, 정신질환자를 포함하는데도 실제 1단계는 노인과 일부 고령 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돼 우려가 크다. '2단계부터' 혹은 '3단계부터' 포함이 된다고 한 집단이 현실에서는 유예되거나 포함되지 못한 경험이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진정한 '통합'이 되려면 이 목소리를 반드시 경청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 지방자치단체 역량을 외면한 채 모든 집단을 즉각 포함하겠다고 약속하는 것도 책임 있는 접근이라고 볼 수 없다. 지역마다 돌봄 수요, 의료·요양 인프라, 인력·재정 여건의 격차가 크고, 어떤 곳은 방문의료와 돌봄 인프라조차 부족하다. 이런 현실을 외면한 보편적 선언은 현장의 불신만 키운다.
성패는 결국 지방정부가 쥐고 있다. 법과 로드맵은 중앙이 만들지만, 대상자를 찾아내고 서비스를 엮어 개인별 지원계획을 세우며, 동네 병·의원과 복지기관, 요양기관을 움직이는 일은 시·군·구의 몫이다. 시범사업에서도 전담조직과 역량을 갖춘 지자체와 그렇지 못한 곳 사이의 격차는 이미 뚜렷했다. 이를 방치하면 통합돌봄은 제도의 명칭은 같지만 지역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되는 또 하나의 복지 정책으로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의 역할은 '지자체에 맡긴다'에서 끝나지 않는다. 현재 예산과 인력 보강은 최소한의 출발선일 뿐, 229개 지자체가 제도를 온전히 운영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새로 확충되는 인력도 상당수가 행정과 계획을 담당하는 공공 인력이고, 실제 지역에서 돌봄을 제공할 사람을 구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중앙정부가 1단계에서 ▲케어매니저의 체계적 양성 ▲민간·비영리 제공기관과의 파트너십 구축 ▲돌봄 인력 처우 개선과 같은 기반을 제도와 재원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아울러 장애인과 정신질환자의 통합돌봄이 또 미뤄지지 않도록 단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로드맵이 2단계에서 의료 필요도가 높은 장애인과 중증 정신질환자로 대상을 넓히고, 3단계에서 추가 확대를 검토하겠다고 한 만큼, 이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 개선과 예산, 지자체 준비 계획을 처음부터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도입기 말에 여건이 안 된다는 이유로 확대가 미뤄진다면, 통합돌봄은 출발선에서부터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통합돌봄은 개별 사업의 묶음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정부, 지역사회가 돌봄 부담을 어떻게 나눌지에 대한 사회적 약속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로드맵이 다음 단계로 꾸준히 이어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은 한국 돌봄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다. 지자체의 준비 상황과 현실적 제약을 솔직히 인정하되, 장애인과 정신질환자를 포함한 모든 돌봄 당사자가 가능한 한 빠르게 제도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함께 책임을 나누어야 한다. 그것이 흔들리지 않는 첫걸음을 만들어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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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주 가천대 사회정책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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