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실증도시' 참여사업자 신청이 일주일 뒤면 마감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지방 도시 하나를 통째로 자율주행 규제 샌드박스로 지정해 마음껏 운행해보자"라고 밝히며 시작된 실증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신청 기업이 참여하는 현장 평가 등을 거쳐 사업자가 최종 선정되면 올 하반기부터 광주 도심을 로보택시가 누비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된다.


[초동시각]'40조 vs 600억'…로보택시,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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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동을 걸기도 전부터 현장에서는 "이대로는 어렵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자율주행 업계 관계자들은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통령 역점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업에는 국비 610억원이 투입된다.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전체 예산의 약 80%인 480억원이 차량 구입과 개조 비용이다. 총 200대 로보택시를 운영하는데 대당 2억원 이상 들어가는 셈이다. 제도적으로 불가하지만, 기술적으로 '감독형 FSD(Full Self-Driving)'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는 테슬라 모델 3·Y가 5000만원 이하로 팔리는 것에 비하면 너무 비싸게 책정된 감이 있다.


"차만 사고 쓸 돈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로보택시를 안전하게 운영하는 안전운전 상용화에는 48억원이 배정됐다. 로보택시를 운행하려면 1대당 최소 1명 이상 안전요원이 필수적이다. 로보택시를 24시간 가동한다고 하면 8시간 근무자 3명이 필요하다. 48억원은 200대를 담당할 안전요원 일당을 주기에도 빠듯하다.

정작 중요한 운행 데이터를 수집, 가공하는 데에는 고작 20억원뿐이다. 수집한 데이터는 광주 국가인공지능(AI)데이터센터의 고성능 컴퓨터를 통해 학습될 예정인데, 이곳은 지난해 예산 문제로 가동률이 절반에 그치는 문제를 겪기도 했다. 일각에서 "결국 차량 공급사인 대기업만 배 불리는 사업 아니냐"라는 자조 섞인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로보택시 선두 주자인 구글 '웨이모'는 2016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외부 펀딩으로만 약 271억달러, 40조원을 끌어모아 투자를 해왔다. 매년 로보택시 운행 유지비로만 1조~2조원을 쏟아붓는다. '돈이 곧 데이터, 데이터가 곧 기술'인 자율주행 시장에서 40조원을 쏟아붓는 공룡과 600억원으로 살림을 꾸려야 하는 국내 업체의 체급 차이는 뼈아픈 한국 자율주행의 현주소다.


돈뿐만 아니다. '경험'에서도 차이 난다. 정부는 사업자 3곳을 선정해 로보택시를 투입할 계획이지만, 국내 업체 중에 100대 이상 한꺼번에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곳은 전무하다. 몇 대 차량을 통제된 구역에서 굴리는 것과 수백 대 로보택시를 도심 속에서 관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차량 공급사와 플랫폼 업체, 보험사 등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얽히면 자칫 사업이 헛바퀴가 돌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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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자율주행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뒤처진 후발주자다. 선두와 격차를 줄이는 방법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정교한 설계뿐이다. 단순히 경험을 쌓고 운행 대수를 채우는 '전시성 사업'에 그쳐선 안 된다. 실질적인 데이터가 쌓이고 사업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세심한 제도 설계와 일관된 추진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미래 모빌리티의 주도권을 가를 로보택시 사업인 만큼 첫술에 배부를 순 없다. 대신 "우리도 해볼 만하다"고 느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100년을 좌우할 '자율주행 대계'가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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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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