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KAIST 리더십 위기, 테크 생태계 흔들린다
K스타트업 산실, 총장 선임 불발
정치권 눈치보기는 이제 그만
한국 공학과 과학계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과 카이스트(KAIST) 총장 중 선택한다면 무조건 카이스트 총장을 선택하겠다는 이들이 꽤 많다. 장관 자리도 상징성이 크지만, 카이스트가 한국 과학과 공학계에서 가지는 위상을 따져보면 카이스트 총장이 더 매력적인 자리라는 인식인 셈이다. 실제로도 과거 과기정통부 장관직 제의를 받았지만, 고사한 인사가 카이스트 총장에 도전하기도 했다. 서울대 총장에 도전했지만 실패하고 과기정통부 장관에 입각한 과학자의 사례도 있다.
지난달 26일 열린 카이스트 이사회는 1년 넘게 미뤄온 총장 선출에 실패했다. 아니, 사실상 포기였다.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지만, 과기정통부가 사실상 유도한 결과라는 후문이다.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연구 중심 대학이 리더십 공백 상태에 놓인 것은 단순한 인사 문제가 아니다. 한국 과학 행정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 사건이다. 카이스트 신입생과 학부모들은 입학식 다음 날 총장 선출 불발과 사임이라는 소식을 접해야 했다. 의사가 아닌 과학자나 엔지니어가 되기 위해 대전으로 향한 이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입학 선물'이었다.
카이스트 총장 선임 과정이 난항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후보 검증과 이사회 심의, 정부와의 관계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구조 때문에 총장 선출은 늘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처럼 선출 자체가 불발되는 상황은 한국 과학기술계에 상당한 충격이다. 이미 학내는 뒤숭숭하고 연구에 주력해야 할 교수들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등 에너지를 소비하고 있다.
연임을 위한 개인의 욕심은 오히려 조직에 혼란을 줬다. '나만 할 수 있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과학 리더를 키우기 위해 리더십 강좌를 필수 수강하게 하는 카이스트답지 않은 일이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사태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과기정통부는 손을 놓고 있었고, 대통령실의 눈치만 보며 적극적인 조정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학기술을 국가 전략이라고 강조해 온 정부라면 최소한 한국 과학기술의 상징적 기관이 리더 없이 방치되는 상황만큼은 막았어야 했다. 계엄을 거치며 공직사회 인사에서 '사상 검증'에 가까운 인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정치적 기준이 과학기술 리더십 인사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국가 연구기관은 방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측근 인사를 선임하겠다는 시도는 더욱 경계해야 한다.
총장 선임 제도 설계 역시 재검토가 필요하다. 출연연 기관처럼 기존 총장에 대한 연임 심사를 먼저 진행하고 이후 후임 후보를 선정하는 방식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공백 사태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카이스트의 리더십 공백이 더욱 우려되는 이유는 이 학교가 한국 기술창업 생태계의 핵심축이기 때문이다. 카이스트에 따르면 2021년 이후 상장한 카이스트 출신 창업기업만 20곳이 넘으며, 2024년 한 해에도 엔젤로보틱스·토모큐브·아이빔테크놀로지 등 4개 스타트업이 증시에 입성했다. 카이스트 구성원의 창업은 연평균 110건에 달하고, 누적 창업기업은 1914개에 이른다. 이들 기업의 총자산은 94조원, 매출은 36조원, 고용 인원은 6만여명 규모다. 주요 스타트업의 기업가치를 합산하면 약 10조원에 달하는 창업 생태계가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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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로봇, 우주 등의 분야에서 한국을 주도 중인 카이스트를 미 스탠퍼드대에 맞서는 창업 중심 대학으로 육성하려면 더 이상의 혼란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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