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이 잘라내는 영화계 '허리'
스크린 쏠림이 기형적 성과 낳아
200만~400만 '분산된 성공' 창출해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다. 모처럼 극장이 인파로 붐비고, 상영관마다 관객이 빽빽하게 들어찬다. 특히 설 연휴인 지난달 18일 좌석 판매율은 60.1%였고, 지난 1일에는 하루에만 81만7189명이 관람했다.
이 화려한 흥행 축포를 한국 영화 생태계의 부활로 규정할 수는 없다. 영화산업은 단발성 축제가 아니라 투자금의 회수와 재투자로 굴러가는 냉혹한 시장이다. 이 관점에서 1000만 영화는 산업 활성화의 원동력이라기보다, 승자독식 구조가 낳은 기형적 결과물에 가깝다.
지난 5년의 궤적이 이를 명징하게 증명한다. '범죄도시' 시리즈가 연이어 신드롬을 일으키고 '파묘', '서울의 봄' 등이 1000만 축포를 터뜨렸지만, 한국 영화계의 보릿고개는 계속되고 있다. 극소수 메가 히트작이 전체 매출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동안, 다수 제작사는 도산 위기를 맞았고 신규 투자는 자취를 감췄다.
영화산업의 건강은 초대박 한 편이 아니라 다양한 작품의 생존이 담보한다. 다수 투자자가 자본을 댄 영화들이 연쇄적으로 망하지 않고, 일정 비율 손익분기점을 넘겨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 자본이 다음 기획으로 흘러갈 때 시장은 비로소 성장한다.
가장 절실한 처방은 결국 1000만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두꺼운 허리'다. 200만~4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와야 한다. 이 견고한 중간 지대에서 새로운 장르와 얼굴이 탄생해야,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할 기회가 생긴다.
하지만 지금의 극단적 양극화 체제는 이 허리를 잔혹하게 절단한다. 특정 영화가 극장가 매출을 싹쓸이하는 동안, 나머지 작품은 개봉했다는 기록만 남긴 채 소리 없이 침몰한다. 특정 흥행 공식에 대한 맹신은 투자 논리 자체를 경직시킨다. 자본이 '안전한 공식'을 답습하는 극소수 작품만 좇는다.
극장도 다르지 않다. 메가 히트작의 탄생은 관객의 선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멀티플렉스는 일일 관객 수, 좌석 판매율 등 지표가 치솟은 작품에 상영 회차를 기하급수적으로 몰아준다. 압도적인 물량 공세는 관객이 다양한 작품을 비교하고 탐색할 권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결국 1000만 영화의 탄생은 한 편의 위대한 성공인 동시에, 시장이 켜는 구조적 경고등이다. 한 작품이 관객을 독식하는 순간, 경쟁작의 투자자와 제작자는 막대한 손실을 떠안는다. 다음 라운드로 넘어갈 때 시장에 남는 것은 성공의 쾌감이 아니라 손실의 공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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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혹한 공포의 굴레를 끊어내는 길은 1000만 영화의 환상을 과감히 깨부수는 결단에서 출발한다. 화려한 숫자 이면에 방치한 앙상한 생태계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한 편의 거대한 축포보다 여러 중급 영화가 연쇄적으로 살아남는 분산된 성공만이 한국 영화의 진짜 숨통을 틔운다. 화려한 신기루에 취해 튼튼한 허리를 잃어버린 거인은 결코 제 발로 오래 걷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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