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알쓸신잡]순환출자 끊는 日도요타…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촉매될까
도요타그룹, 자동직기 공개매수 엘리엇과 합의
55조원 규모…일본 역대 최대 M&A
상호·순환출자 해소와 창업일가 승계 포석
국내 순환출자 기업 현대차그룹에 시사점
5조9000억엔(약 55조원). 일본 도요타그룹이 계열사 도요타 자동직기를 비상장화하는 데 투입하기로 한 금액입니다. 일본 기업 대상 인수합병(M&A) 거래로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지난 2일 도요타그룹은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 공개매수 인수가액을 주당 2만600엔으로 최종 합의했습니다. 처음 제시한 주당 1만6300엔에서 9개월에 걸쳐 26%를 더 올린 건데요.
9일 M&A알쓸신잡에선 도요타가 막대한 금액을 들여 자기 계열사를 사들인 이유와 이 거래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순환출자를 유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주는 시사점을 함께 짚어봤습니다.
도요타의 55조원짜리 '출자 고리' 풀기
도요타그룹은 일본 특유의 '케이레츠(계열)'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입니다. 도요타 자동차, 자동직기, 덴소, 아이신정기 등 핵심 계열사들이 서로의 지분을 보유하며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고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핵심은 그룹의 '원조' 기업인 자동직기입니다. 1926년 창업주 도요다 사키치가 설립한 방직기 제조회사가 출발점이고, 여기서 자동차 부문이 분리돼 지금의 도요타 자동차가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사업은 방직기와는 거의 관련 없고, 세계 최대 지게차 제조업체로 거듭났습니다.
문제는 이 구조가 그룹 결속력을 높이는 대신 외부의 경영권 위협에도 취약하다는 점입니다. 자동직기가 상장사로 남아 있으면 외부 투자자가 자동직기 지분을 사들여 간접적으로 도요타 자동차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엘리엇이 자동직기 지분을 3.3%에서 7.1%까지 확대하며 인수가액 인상을 압박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도요타의 선택은 자동직기를 완전 자회사로 만든 뒤 상장폐지하는 것이었습니다. 비상장 계열사인 도요타 부동산 아래 신규 지주사와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자동직기 지분 전량을 매입하고, 스퀴즈아웃(소수 주주 강제 매수)을 통해 상장을 폐지하는 3단계 구조입니다. 자동직기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도 매각해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계획입니다.
"日 자본시장 내 행동주의 역할 확대 영향도"
최태용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공개매수는 단순한 비상장화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창업일가의 승계를 감안한 지배구조 개편의 시작점"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창업일가 지분율이 최대 12% 내외에 불과해 지분 매입만으로는 충분한 지배력 확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도요타는 최근 아키오 회장의 장남 도요다 다이스케(38)가 우븐(Woven)의 수석부사장으로 재직 중이며, 신임 최고경영자(CEO) 켄타 콘과 함께 근무하고 있어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죠.
이번 거래에서 눈여겨볼 점은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의 역할입니다. 도요타그룹이 지난해 6월 공개매수를 처음 발표했을 때 인수가액은 4조7000억엔(주당 1만6300엔)으로 시가 대비 23% 프리미엄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엘리엇이 일본 증시 평균 공개매수 프리미엄(40% 내외)에 못 미친다며 주당 2만6000엔을 요구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도요타는 올해 1월 5조4000억엔(프리미엄 41.9%)으로 올렸지만 엘리엇은 거절했고, 결국 이달 2일 5조9000억엔(프리미엄 55.4%)에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일본 내 행동주의 펀드 캠페인 건수가 2018년 60건 내외에서 2024년 150건 가까이 급증한 흐름 속에서, 소수주주 권리가 실제 M&A 가격에 반영되는 사례로 기록될 전망입니다.
현대차그룹의 '두 번째 승계 설계도'는 언제
도요타 사례가 국내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현대차그룹과의 구조적 유사성 때문입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10대 그룹 중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8년 현대모비스 인적분할과 현대글로비스 합병을 통한 지배구조 개편을 시도했지만, 합병 비율 논란과 투자자 반발로 두 달 만에 철회된 바 있습니다.
DS투자증권은 현대차그룹 개편의 핵심 목표를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순환출자 해소, 정 회장 중심 지배력 강화, 현대모비스 중심 지배구조 구축입니다. 도요타 개편이 지배력 약화가 아니라 창업일가 지배력 강화를 목표로 설계됐다는 점에서 현대차그룹의 방향성과 일치합니다. 정 회장이 순환출자 해소와 승계를 마무리하는 데 필요한 자금은 지난해 말 기준 약 5조8000억원으로 추산했습니다. 기아와 현대제철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 매입에 약 3조원, 정몽구 명예회장 보유 계열사 지분의 승계 관련 자금까지 합산한 규모입니다.
관건은 정 회장의 자금 조달 능력입니다. 2018년과 달라진 점은 그룹 핵심 계열사 기업가치가 크게 올랐다는 것입니다. 현대차 시가총액은 100조원을 돌파했고, 현대모비스·현대오토에버 등 핵심 계열사 가치도 동반 상승했습니다. 기업가치 상승은 곧 대주주의 보유 자산 가치 상승이자 지분 거래에 필요한 레버리지 확대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비상장사인 미국 로봇 개발 기업 보스턴다이나믹스(BD)의 기업공개(IPO)가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정 회장은 BD의 주요 주주로, IPO가 성사될 경우 구주매각을 통해 3조~4조원 규모의 추가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약 23%) 역시 정 회장의 핵심 재원으로 꼽히죠.
자본 배치의 차이가 만드는 지배구조 전환 차이
다만 도요타와 현대차그룹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도요타는 내부 지분 정리에만 5조9000억엔 이상을 소진해야 합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지분 교환이나 모비스 인적분할 같은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순환출자를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증권가의 분석입니다.
최 연구원은 "도요타는 막대한 자본을 내부 구조 정리에 써야 하지만, 현대차그룹은 그 자본을 미래 밸류체인에 집중할 수 있다"며 "기존 완성차 업체에서 '피지컬 인공지능(AI)' 플랫폼으로의 전환 속도 우위를 증명하는 핵심 논리"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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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일본에서 순환출자를 유지하는 상장사 비중은 1990년대 30%를 넘었지만, 현재 1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한국에서도 SK, LG, 삼성 등 대부분의 대기업이 순환출자를 해소한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의 해소 권고와 상법 개정에 따른 이사 충실의무 강화까지 맞물린 상황이죠. 도요타가 55조원짜리 '큰 그림'을 꺼내든 지금, 현대차그룹의 '두 번째 설계도'에도 시장의 관심이 쏠리는 배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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