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속노화 기술보다 '웰 에이징'
성공 속도 멈추고 성숙을 고민

[남산길 산책]인생 2막에 읽는 인생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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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출판가엔 '오십에 읽는 ○○'이라는 제목의 고전 재해석서가 넘쳐난다. 왜 삼십이나 사십이 아니라 오십일까. 책을 선호하는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라는 인구학적 특성도 있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오십은 퇴장의 예고가 아니라 인생 2막의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우리 사회를 휩쓴 키워드는 '저속노화' '안티 에이징'이었다. 노화를 늦추고 생물학적 시간을 붙잡겠다는 관리 전략이다.


그러나 오십 이후에 정작 필요한 것은 나이 드는 속도를 늦추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바꾸는 '웰 에이징' 전환 능력이다. 저속노화가 시간을 거스르는 '관리'라면, 웰 에이징은 시간을 받아들이는 '해석'이란 의미에서다.

단테는 '신곡'에서 "인생길의 한가운데서 나는 어두운 숲에 있었으니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썼다. 숲은 방향 상실의 지점인 동시에 방황 각성의 전환점이다. 예전의 성공 공식이 흔들리고 외부의 박수는 줄어드는 시기. 이때 필요한 것은 더 빨리 달리는 체력도, 청춘을 되찾고자 하는 줄기세포도 아닌,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지 분별하는 판단력이다. 달릴 줄 아는 건 능력이지만, 그칠 줄 아는 건 지혜다.


미국의 사회과학자 아서 브룩스는 인생 2막 전환을 심리학자 레이먼드 카텔의 지능 이론으로 설명한다. 젊은 시절의 성취를 이끄는 것은 분석적 사고와 추론, 혁신적 속도를 기반으로 한 '유동적 지능(Fluid Intelligence)'이다. 중년 이후에 성숙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축적된 지식과 경험을 통합하는 '결정적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다. 다윈은 쉰 살에 '종의 기원'으로 정점에 올랐지만 이후에도 젊은 시절의 자신과 경쟁했다. 유동적 지능이 쇠퇴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전성기의 자신과 경쟁하며 2막을 연장전으로 살았다. 반면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제자를 길러내고 평생의 지식을 집대성하며 결정적 지능의 시대로 진입했다.

인생 후반에는 성공 외에도 성숙이란 다른 의미 공식이 필요하다. 공자는 이를 간결한 인생 연표로 남겼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고(志于學), 서른에 자립했으며(而立), 마흔엔 외부 유혹에 흔들림이 없는 기준을 세웠고(不惑), 쉰에 천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에 귀가 순해졌고(耳順), 일흔에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다(從心所欲 不踰矩). 오십에 알게 되는 '천명'은 더 큰 성공을 향한 명령이 아니다. 무엇을 더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를 아는 분별이다. 외부 평가 대신 내부 기준을 세우는 일, 성공의 속도와 규모 대신 삶의 밀도를 묻는 각성이자 전환이다.


얼마 전 지인의 환갑 기념 연극에서 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금이 간 백자를 조심스레 들어 보이며 말했다. "백자에 난 균열은 'Back自' 나에게로 돌아가란 의미입니다. 상처가 아니라 빛과 공기의 통로입니다." 일본의 킨츠기 공예는 깨진 자리를 금으로 이어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금(crack)은 단순한 흠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비추는 금(gold)이 되기도 한다. 인생 2막은 성공보다 성숙으로 의미의 축을 옮겨, 삶의 의미와 기준을 다시 설계하는 전환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인생 후반은 또 다른 봉우리를 다시 오르는 경주라기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전환국면이란 생각을 문득 해본다.


금이 간 자리로 빛과 공기가 통한다. 그 균열을 단지 상처로 남길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축적의 의미 통로로 읽을 것인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보다 더 깊이, 더 단단히, 더 의미 있게. 그것이 인생 2막의 인생 문법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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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회 CEO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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