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기름값 뒤집었다…"휘발유 200원 오를 때 경유 350원 올라"[중동發 에너지쇼크]①
전쟁 여파 국제유가 급등
경유 수요처 많아 인상폭 커
LNG대체할 유일 발전 연료
'에너지 인플레' 가시화 우려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경유 가격이 휘발유를 추월하는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에너지 시장 불안이 국내 연료 가격에 빠르게 반영되면서 일부 주유소에서는 경유 가격이 휘발유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세진주유소의 경우 4일 기준 휘발유 가격이 ℓ당 1794원인 반면 경유는 1806원에 판매됐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12원 높은 수준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요동치자 국내 연료 가격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기름값이 하루 사이 ℓ당 100원 넘게 뛰면서 가격 인상 전에 주유하려는 차량들이 주유소로 몰리는 모습이다.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에는 수십 대의 차량이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주유소는 아직 기름값을 올리지 않아 휘발유를 1600원대에 판매하는 곳이었다. 주유소 관계자는 "3월2일부터 3일까지 주유소로 납품되는 기름값이 휘발유는 200원, 경유는 350원 올랐다"며 "오늘 전국 평균가격이 1700원인데 다음주부터는 1900원 이상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운전자들의 체감 부담도 커지고 있다. 경유차를 운행하는 직장인 B씨는 최근 주유소에서 가격을 확인한 뒤 "기름값이 이렇게 오른 줄 몰랐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경유 가격이 2200원까지 올랐던 때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한국석유협회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5일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1807원, 경유 가격은 1785원으로 집계됐다. 오름 정도는 경유가 훨씬 더 높았다. 지난달 28일을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경유는 187원 올라 휘발유 상승가인 114원보다 더 많이 올랐다. 특히 에너지 수급이 많은 서울만 놓고 보면 경유의 오름세는 더 가팔라진다. 같은 기간 서울 지역 휘발유 가격은 124원 상승했지만, 경유 가격은 201원 급등해 약 80원이 더 비쌌다.
경유가 휘발유 가격을 앞지르는 것은 국제유가 급등 이후에 따라오는 공급 차질 우려 때문이다. 경유는 휘발유와 달리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난방이나 발전, 선박용으로도 널리 사용되기 때문에 수요처가 다양하다. 찾는 곳이 많다 보니 공급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더욱이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발전용 연료가 경유여서 현 상황에서 가격 급등세가 오히려 휘발유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과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에도 러시아가 유럽에 공급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통제하자 경유 가격이 급등했다"면서 "LNG 대신 경유를 발전용 연료로 사용하면서 가격 상승세를 이끌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유가가 불안정해지면서 산업계는 단순 가격 변동성을 넘어 전 세계 수급구조에도 변동이 와 '에너지 인플레이션'이 가시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전 세계 석유 수요는 약 1억배럴 정도인데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석유랑은 하루에 2000만배럴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길어질 경우 현재 공급의 20%가 사라지는 것이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이 한 달가량 봉쇄되면 원유 약 9000만배럴의 국내 도입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국내에서 약 한 달(31일)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한국해양진흥공사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이 1개월 중단될 경우 원유선은 45항차(정해진 항로를 따라 한 바퀴 운항하는 횟수), LNG선은 8항차의 차질이 예상된다. 국내 원유 수급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LNG선 운항 차질로 겨울철 수급 불안 위험까지 높일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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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이 대체 항로를 이용하더라도 중동에서 한국까지 기존 25일이 걸리는 운항 일정은 최소 35일, 최대 60일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운임 상승으로 인해 가격 변동 폭을 더욱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해진공은 과거 사례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통과가 허용되더라도 정상화되기까지 통항 제한 기간의 약 2배의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사태 진정 후 대기 물량 일시 출회로 인한 '병목현상'과 선복 부족이 심화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에너지와 해운 산업은 물론 중동에 수출하던 프로젝트 등이 전반에 걸쳐 상당한 부담을 갖게 될 것"이라면서 "특히 석유화학업계는 구조조정이 이제 막 시작된 상황에서 관련 업계의 어려움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백종민 테크 스페셜리스트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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