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합은 어떻게 국민의 삶을 파괴했나
밀가루값 오르면 라면값 인상
원재료비 내려도 가격은 올랐다
인상은 전광석화…'찔끔' 인하도 하세월

편집자주밝은색을 띨수록 고급으로 분류되는 '하얀 가루'. 조선 시대 '진가루'라고 불리며 귀한 대접을 받던 밀가루는 6·25 전쟁 이후 원조 물품으로 대량 유입돼 폐허가 된 한반도 백성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줬다. 국수부터 라면, 빵, 과자 등 국민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밀가루는 식품 산업의 필수 원재료로, 가격이 오를 경우 밀가루를 원료로 한 식품 가격뿐만 아니라 '밥상·외식물가'도 동반 상승해 서민들의 생활비 부담을 키웠다. 아시아경제는 검찰의 밀가루 담합 사건 공소장을 토대로 6조원에 이르는 '밀가루 가격 담합' 설계 과정을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 지난 6년간 담합이 어떻게 서민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었는지 해부했다.

#국내 라면 시장 1위인 농심 농심 close 증권정보 004370 KOSPI 현재가 367,000 전일대비 0 등락률 0.00% 거래량 13,756 전일가 367,000 2026.04.03 15:30 기준 관련기사 [단독]中 불닭 인지도 꺾은 농심…'한강 라면' 앞세워 보폭 넓힌다 농심, 짜파게티 새 모델로 후덕죽 셰프 발탁…라초맛 요리법 공개 비싼 물맛? 저렴해도 괜찮아…매출 꺾인 생수 1위 은 지난해 3월 대표 제품인 신라면 가격을 소매점 기준 950원에서 1000원으로 올렸다. 새우깡 가격도 100원 인상해 1500원으로 조정했다. 2024년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며 지난해 연초부터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오르자 인상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당시 농심은 "원재료비와 환율이 상승함에 따라 가격 조정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판매대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판매대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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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 기간 원·달러 환율은 고공행진했다. 하지만 농심은 밀가루의 원료인 원맥 국제가격이 급락한 2023년부터 제분업체를 상대로 꾸준히 공급가격 인하를 요청하면서 밀가루 원가 부담은 소폭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농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800억원을 기록, 전년 대비 10% 넘게 늘어났다.

11일 본지가 입수한 검찰의 밀가루 담합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농심은 지난해 2월 밀가루를 공급하던 제분사들을 상대로 공급 가격 조정을 요청했고, 이에 제분사들은 밀가루 공급 가격을 ㎏당 3~10원 인하했다.


앞서 농심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22년 52만8868원까지 급등한 원맥 수입가격이 하락세를 보인 2023년 제분업체들에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했고, 담합에 나선 제분사들은 최종 ㎏당 약 30~50원 낮췄다. 또 원맥 수입가격이 43만441원으로 떨어진 2024년에도 농심은 또다시 공급가격 조정을 요구했다. 이에 제분사들은 최종 ㎏당 55~75원 인하했다.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원본보기 아이콘

앞서 농심에 밀가루를 공급한 대한제분 대한제분 close 증권정보 001130 KOSPI 현재가 143,300 전일대비 1,200 등락률 +0.84% 거래량 1,831 전일가 142,100 2026.04.03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설계자들]①“농심도 당했다”…참치집에서 시작된 담합의 기술 사조동아원 사조동아원 close 증권정보 008040 KOSPI 현재가 978 전일대비 6 등락률 +0.62% 거래량 636,418 전일가 972 2026.04.03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설계자들]①“농심도 당했다”…참치집에서 시작된 담합의 기술 , CJ제일제당 CJ제일제당 close 증권정보 097950 KOSPI 현재가 226,000 전일대비 6,000 등락률 +2.73% 거래량 133,853 전일가 220,000 2026.04.03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손경식 CJ제일제당 대표 "헬스케어 적극 육성…차세대 웰니스 시장 주도"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등 메이저사들은 2019년부터 담합을 통해 농심에 공급하던 밀가루 가격을 대폭 올렸는데, 원맥 가격 인하에 따라 밀가루 공급가격도 3년 연속 떨어진 것이다.


밀가루값 내렸는데, 라면 가격은 다시 올랐다

하지만 밀가루 공급가격이 오르던 시기 농심을 비롯한 라면 제조사는 잇따라 가격 인상에 나섰다. 제분 메이저사들의 가격 담합 대상이던 농심은 2021년 8월 신라면 가격을 6.8% 인상했고, 삼양사 삼양사 close 증권정보 145990 KOSPI 현재가 45,350 전일대비 150 등락률 +0.33% 거래량 6,831 전일가 45,200 2026.04.03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포켓몬빵부터 라면까지 싹 내린대"…다음달 1일부터 바뀌는 가격표 삼양사, 차세대 식이섬유 '케스토스' 국제무대 첫 선 와 대선제분, 삼화제분, 한탑 한탑 close 증권정보 002680 KOSDAQ 현재가 757 전일대비 18 등락률 +2.44% 거래량 288,772 전일가 739 2026.04.03 15:30 기준 관련기사 [Why&Next]담합 식품사 작년 '적자행진'…1兆 과징금 '선반영' [설계자들]①“농심도 당했다”…참치집에서 시작된 담합의 기술 [설계자들]①'대기업 김부장'도 울고갔다…'약한 고리' 노린 담합의 기술 등 마이너사가 가격담합을 주도한 팔도는 같은 해 9월 라면 가격을 평균 7.8% 올렸다. 농심은 이듬해 9월에도 신라면 가격을 11% 인상해 1000원으로 올렸다. 팔도 역시 같은 달 라면 가격을 평균 9.8% 올렸다.


이 같은 가격인상은 담합 대상에서 제외된 라면업체들로 이어졌다. 오뚜기는 2022년 10월 진라면 등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11% 인상했다. 삼양식품도 2022년 11월 라면 가격을 평균 9.7%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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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에는 라면 가격이 떨어졌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추경호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라면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식품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주문하면서다. '물가 상승'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농심· 오뚜기 등 라면 업체 4곳은 라면 출고가를 5%(약 50원) 인하했다. 13년 만의 가격 인하였다.


하지만 밀가루 공급가격이 계속 하락하던 지난해 상반기에는 다시 60개가 넘는 가공식품의 가격이 상승했다. 라면업체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뚜기는 진라면 가격을 716원에서 790원으로 올렸다. 팔도 역시 팔도비빔면 가격을 1100원에서 1150원으로, 왕뚜껑 가격을 1400원에서 1500원으로 각각 조정했다.


라면 원가는 밀가루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팜유와 수프 원료, 포장재, 물류비, 인건비, 환율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다만 핵심 원재료 가운데 하나인 밀가루 가격이 최근 2년 사이 약 20%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라면가격 인상에 대한 비판 여론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원본보기 아이콘

가격 올린 뒤 수익성 개선…라면 업체 영업이익률 상승


제품 가격 인상 이후 라면기업 수익성은 개선되는 흐름을 보였다. 팔도 매출은 2021년 7678억원에서 2022년 1조389억원으로 늘었고, 2023년에는 9759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2021년 556억원에서 2022년 1069억원, 2023년 1264억원으로 증가했다. 2년 사이 영업이익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률도 2021년 7.2%에서 2022년 10.3%, 2023년 12.9%로 상승했다. 매출원가율은 같은 기간 67.7%에서 61.7%로 낮아졌다. 가격 인상 이후 원가율이 낮아지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것이다.


농심과 오뚜기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농심 매출은 2021년 2조6629억원에서 2022년 3조1290억원, 2023년 3조4105억원으로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21년 1061억원에서 2022년 1121억원, 2023년 2120억원으로 늘었다. 특히 2023년은 정부 압박으로 신라면 가격을 약 5% 인하했던 해다. 그런데도 농심 영업이익률은 2022년 3.6%에서 2023년 6.2%로 상승했다. 매출원가율 역시 2022년 71.3%에서 2023년 69.6%로 낮아졌다. 가격 인하가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원본보기 아이콘


"라면값 또 올라서 봤더니 밀가루값 내렸더라" 결국 소비자 부담만 늘었다[설계자들]② 원본보기 아이콘

오뚜기 매출은 2021년 2조7390억원에서 2022년 3조1833억원, 2023년 3조4545억원, 2024년 3조5391억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21년 1665억원, 2022년 1856억원, 2023년 2548억원, 2024년 2220억원이다. 오뚜기의 매출원가율은 2023년 기준 약 82%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영업이익률은 2021년 6.1%에서 2023년 7.4%로 개선됐다.


밀가루 가격이 오를 때 라면 가격은 함께 상승했다. 하지만 밀가루 가격이 내려간 뒤에도 라면 가격 인상 흐름은 이어졌다. 기업들은 가격 인상의 배경으로 원재료 가격 상승을 강조해 왔지만, 실적을 보면 가격 조정 이후 수익성이 개선된 흐름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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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재료 가격 협상은 기업 간 거래에서 이뤄졌지만, 가격 부담은 소비자에게 전달됐다.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2024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9.2개에 달한다. 국민 식품으로 불리는 라면 가격의 작은 변화도 소비자 체감 물가에 직결되는 이유다.


임혜선 기자 lhsr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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