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르기성 비염·결막염…일본인 절반 이상 앓는 국민병
전후 국토 복구 위해 심은 삼나무가 원인
마트 전문 용품 코너부터 기업은 알레르기 복지 내놔
지구 온난화 맞물리며 "더 심해질 것" 경고도

도쿄에 도착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저녁부터 기침과 재채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에서 '카훈쇼(花粉症·화분증)'라고 부르는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인데요. 알레르기 하나 없던 한국인도 일본 생활 몇 년 하면 증상이 발현된다는 무서운 병입니다. 저 역시 요즘 마스크 없이 외출하기 쉽지 않고, 매일 저녁 알레르기약을 챙겨 먹는 일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서울보다 먼저 봄이 찾아오는 도시, 벚꽃의 로망이 있는 도쿄.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출퇴근길 마스크 쓰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고요. 지하철 제 옆자리 아저씨도 재채기, 옆 사람도 재채기, 코훌쩍이는 소리가 일상입니다.

삼나무에서 뿜어져나오는 꽃가루. 그린피스.

삼나무에서 뿜어져나오는 꽃가루. 그린피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드럭스토어에서는 아예 전용 용품 코너까지 따로 만들었는데요. 코를 자주 푸는 사람을 위한 부드러운 휴지부터, 코안에 뿌리는 스프레이형 약, 얼굴에 분사해 꽃가루가 피부에 달라붙는 것을 막아준다는 '실드 스프레이'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올해는 또 지난해보다 꽃가루가 더 많이 날릴 것이라는 예보가 나와 열도가 긴장 중인데요.

일본에서는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이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어 '국민병'으로 불립니다. 하루 약 2조 원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분석도 나올 만큼 사회적 문제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은 일본의 봄을 괴롭히는 '카훈쇼'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전후 심은 삼나무가 원인…무작정 벨 수도 없다

카훈쇼는 우리가 아는 꽃가루 알레르기 증상과 비슷합니다. 알레르기성 결막염과 비염이 동반되는 모양새죠. 콧물, 재채기, 코막힘이 3대 증상이고요. 눈도 가렵고 숨도 잘 안 쉬어지니 집중력도 떨어지고 잠도 잘 못 자게 됩니다.


일본 농림수산성에서는 카훈쇼의 원인을 '삼나무'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삼나무 꽃가루가 2월부터 시작해 5월까지 날리는데, 양이 어마어마해 전 국민에게 알레르기를 일으키게 됐다는 것입니다.

Advertisement

원래부터 일본에 삼나무가 이 정도까지 많은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황폐해진 국토를 살리기 위해 성장이 빠르고 건축용 자재로도 쓸 수 있는 삼나무를 마구 심은 것이라고 해요. 한마디로 인간이 만들어낸 인공림에서 발생한 꽃가루들이죠. 일본이 전후 열심히 삼나무를 심은 결과 현재 일본 국토의 40% 정도가 삼나무 숲이라고 합니다.


일본 빅카메라 유라쿠쵸점의 '카훈쇼 전문 코너'. 꽃가루용 스프레이, 마스크, 휴지, 섬유유연제와 세제 등을 진열하고 있다. 전진영 기자.

일본 빅카메라 유라쿠쵸점의 '카훈쇼 전문 코너'. 꽃가루용 스프레이, 마스크, 휴지, 섬유유연제와 세제 등을 진열하고 있다. 전진영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다만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면서, 일본 정부는 2033년도까지 삼나무 인공림 규모를 현재보다 20%로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놓습니다. 삼나무들이 산에 빼곡히 심겨 있다 보니 산사태 등을 생각하면 무작정 베어낼 수도 없는 처지라고 해요. 그래서 나무를 베고 벤 자리에 꽃가루가 적은 다른 묘목을 심는 것으로 차근차근 작업을 진행한다는데요.


일본 정부는 삼나무 수요를 늘리면 삼나무 인공림을 더 빨리 줄일 수 있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주거하는 용도가 아닌 저층 건물은 삼나무를 사용한 목조 건물로 건설하자는 '우드 체인지'라는 정책도 펼치고 있습니다.


물론 삼나무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 4월부터 6월까지 꽃가루가 날리는 편백, 홋카이도에서 잘 자라는 자작나무, 볏과, 국화과 식물들의 꽃가루도 다 같이 날리죠.


기업에선 '경제적 손실' 울상…카훈쇼 수당·휴가 복지로 떠올라

최근에는 카훈쇼가 기업의 생산성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습니다. 일본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제 꽃가루 알레르기 대책을 직원 복지의 영역으로 다뤄야 한다는 인식이 늘어나고 있죠. 시장조사업체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직장인 30%는 꽃가루 날림이 심한 시기에 업무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이렇게 노동력 저하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올해의 경우 하루 2320억엔(2조1678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일부 기업에서는 꽃가루 알레르기 수당도 도입했습니다. 병원 치료비를 보조해주고, 박스 티슈, 마스크를 회사에 무료로 배포하는 곳도 생겨났습니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주간 꽃가루 예보. 일본 기상청.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주간 꽃가루 예보. 일본 기상청.

원본보기 아이콘

여름휴가를 떠나듯 봄철 꽃가루를 피해 가는 휴가를 도입한 기업도 있습니다. 더위를 피하는 피서지처럼, 꽃가루를 피한다는 뜻으로 '피분지(避粉地)'라고 부르는데요. IT기업 아이작은 2022년부터 꽃가루가 많이 날리는 2~4월에는 오키나와 등 피분지에서의 워케이션을 지원합니다. 숙박비랑 작업공간도 모두 회사에서 지원하죠. 워낙 반응이 좋아 지난해부터는 체류지에서 아이 키우는데 도는 보육비까지 범위를 대폭 늘렸다고 해요.


물류회사도 졸음 부작용이 적은 알레르기 약, 코안에 뿌리는 스프레이, 안약 구매 비용을 화물트럭 운전사들에게 지원한다고 합니다. 제대로 자지 못하면 심야에 운전하다가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카훈쇼가 앞으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바로 지구 온난화 때문입니다. 따뜻한 날씨가 꽃의 성장을 촉진해 꽃가루 양이 늘어난다는 것인데요. 그린피스는 "기후 변화가 꽃가루가 날리는 기간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고, 미국 미시간대 역시 기후 위기 대응이 충분하지 않아 평균 기온이 4~6도 상승할 경우 공기 중 꽃가루가 현재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AD

이제 알레르기 대책이 ESG(사회·환경·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거론되는 시대가 왔습니다. 카훈쇼의 원인과 대책 등을 짚다 보니 인간이 선택한 결과를 결국 다시 인간이 감당하는 구조가 선명해 보입니다. 봄철 재채기는 자연의 변덕도 아니고, 한 계절에만 잠깐 찾아오는 불청객도 아니었던 것이죠. 전쟁과 산업화, 그리고 기후변화까지…….사람이 봄을 바꾸고 있었던 것이네요.


도쿄(일본)=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vertisement

오늘의 인기정보

AD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

오늘의 인기정보

AD

오늘의 인기정보

AD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Advertisement

취향저격 맞춤뉴스

오늘의 추천 컨텐츠

AD

오늘의 인기정보

AD

맞춤 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많이 본 뉴스

AD
Advertisement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Advertisement
Advertisement

놓칠 수 없는 이슈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