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은 어떻게 대작 '휴민트'를 제쳤나…극장의 냉혹한 셈법
설 대목 노려 관행 파기…스크린 기민하게 집중
'휴민트', 개봉 이틀째 관객 감소 폭 치명타
초반 지표가 가른 승자독식…극장의 효율성 논리
통상 극장가는 개봉 첫 주말 관객 추이를 확인하고 스크린 수를 조정한다. 입소문이 퍼질 물리적 시간을 부여하는 최소한의 관행이다. 하지만 지난 설 연휴에는 대목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암묵적 규칙을 파기했다. 기대만큼 관객이 모이지 않자 개봉 사흘째부터 스크린을 가차 없이 회수했다.
비운의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신작 '휴민트'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일인 11일에 11만6740명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2주 차를 맞았던 '왕과 사는 남자(8만6924명)'를 2만9816명 차로 따돌렸다.
관객 수만 보면 '휴민트'의 판정승. 그러나 격차는 크지 않았고, 좌석 판매율(12.5%)에선 오히려 3% 뒤졌다. 극장 관계자 A씨는 "실시간 예매율에선 앞섰으나 현장 판매에서 '왕과 사는 남자'에 계속 밀렸다"며 "개봉일 흐름인 점을 고려하면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박스오피스 순위는 하루 만에 뒤바뀌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2일 8만3916명을 동원하며 1위를 탈환했다. '휴민트'는 8만1184명으로 2위였다. 극장들은 관객 수보다 전날 대비 감소 폭에 주목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3.5%(3008명)에 불과했지만, '휴민트'는 30.5%(3만5556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현격한 차이는 좌석 판매율에서도 나타났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6%, '휴민트'는 이보다 5.7% 낮은 8.9%에 그쳤다.
다음 날(13일)에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자 극장들은 전례를 깨고 상영 시간표를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개봉일에 93만2561석이나 배정했던 '휴민트' 좌석 수를 설 연휴가 시작된 14일 86만1245석으로 줄였다. 반면 '왕과 사는 남자' 좌석 수는 56만1069석에서 91만5098석으로 늘렸다.
배급사 관계자 B씨는 "'왕과 사는 남자'의 독주 체제가 굳어진 결정적 배경"이라며 "이른 조정에는 설 대목에 한 자리라도 더 채워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극장들의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다"고 설명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14일부터 17일까지 나흘간 관객 수가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설날인 17일에는 일일 최다 관객인 66만1446명을 모았다. 18일에는 65만3657명을 동원하면서 좌석 판매율 60%도 넘겼다. 19일까지 누적 관객 수는 441만4705명이다.
'휴민트'는 14일부터 18일까지 닷새간 평균 19만6027명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좌석 판매율이 내내 30%를 밑돌았다. 탄력을 받지 못하면서 누적 관객 수는 133만9674명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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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배 이상 벌어진 격차는 극장의 냉혹한 셈법이 개입한 결과다. 표면적 승자는 '왕과 사는 남자'의 투자배급사 쇼박스. 일찌감치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개봉 3주 차에도 흥행세를 이어간다. 극장의 철저한 데이터와 극단적인 효율성 논리는 이 기세를 견인했다. 실시간 현장 반응에 따라 스크린을 기민하게 몰아주며 성수기 수익을 남김없이 흡수했다. 스크린이라는 판을 쥔 극장이 여전히 영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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