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 전관 경찰 모시기
경찰 단계서 사건 실종

[기자수첩]유전무죄의 진화, 유전불송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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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수사권이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이 출범하는 형사사법 시스템의 대전환기. 서초동 법조타운은 분주하다. 대형 로펌들은 기다렸다는 듯 '전관 경찰' 영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변호사와 전문위원을 합쳐 경찰 출신만 100여명을 거느린 로펌 내 거대 '경찰팀'의 등장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은 로펌 시장의 판도를 이미 바꿔 놓았다. 법정에서의 화려한 변론보다 경찰 단계에서 사건을 '증발'시키는 전략이 로펌의 핵심 경쟁력이 됐다. 과거에는 경찰이 수사한 사건이 결론과 무관하게 검찰로 송치돼 한 차례 더 법적 판단을 거쳤다. 지금은 경찰이 '혐의 없음'으로 판단하면 상당수 사건은 그 단계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검찰의 재수사 요청은 전체의 3% 안팎에 그쳤다. 특히 고발인의 이의신청권마저 사라진 지금 이 같은 구조는 한층 강화됐다.

중수청 출범은 이 흐름을 고착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수청 체제는 수사와 기소를 엄격히 분리하는 것이 핵심이다. 변호 전략도 기소 이후 법정 단계보다 수사 단계 대응으로 더 쏠릴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경찰의 '수사 문법'을 읽어낼 수 있는 경찰 전관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이유다.


로펌 입장에서는 시장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다만 앞으로 더욱 비대해질 수사 권력의 속도를 제어할 감시망이 그만큼 촘촘한지에 대한 진한 의문이 남는 건 사실이다. 만약 거대 자본이 얽힌 권력형 비리나 경찰 내부 비위가 초기 단계에서 종결된다면, 사법 정의를 바로잡을 길은 원천 차단된다. "수사 주체와 최종 처분 주체가 동일한 구조가 타당하냐"는 현직 검사장의 탄식이 단순히 '조직 이기주의'로만 읽히지 않는다.

결국 우려되는 것은 사법 정의의 양극화다. 돈 있는 이들은 고액의 전관 경찰을 앞세워 수사의 칼날을 요리조리 피하는 동안, 피해를 입은 서민들은 내 사건이 왜 종결됐는지 이유도 모른 채 발을 동동 구를 수 있다. 과거의 '유전무죄'가 수사 단계에서 사건이 사라지는 '유전불송치'로 진화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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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청 시대가 진정한 수사 효율화를 의미하려면, 전건송치 부활 여부를 포함해 불송치 결정에 대한 외부적 재검증 장치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논의가 병행돼야 한다. 수사의 부실을 바로잡을 마지막 보루인 '보완수사권'마저 무력화될 경우 발생할 사법 통제의 공백도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 견제 없는 권한은 언제든 오판과 독단의 위험을 안고 있다. 사법 시스템의 신뢰는 권한의 크기가 아니라, 그 권한이 어떻게 통제되는지에 달려 있다.


변선진 기자 s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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