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억 성역화 사업의 공허함…우리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의원(국민의힘·대구 북구을)이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전년도(2025년) 설 연휴 인기 관광지 분석' 자료는 우리 전통 관광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전조등(前照燈) 역할을 했다.


데이터에 따르면 전국 1~3위는 코엑스, 에버랜드, 롯데월드가 휩쓸었으며, 경북의 상징인 불국사는 25위에 턱걸이했다.

세계 유일의 수중릉인 문무대왕릉은 전국 TOP 30위권에서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이 데이터가 오늘날 우리에게 유독 차갑게 다가오는 이유는 현재 경주 문무대왕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상황과 묘하게 겹치기 때문이다.

입천리 일대에서 발생한 불길이 강풍을 타고 국가적 대응 단계에 이를 만큼 확산하는 가운데, 우리가 그토록 '보존'을 외치던 유산의 터전이 시커먼 잿더미 위기에 처했다.


정작 현실의 불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면서, 관광 자원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는 행정은 '규제'라는 또 다른 불통의 벽에 막혀 있다.


추이잉광(59·북경) 한중기업가협회 부회장이 "해변에서 바위만 보고 실망했다"고 던진 혹평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김승수 의원이 분석한 자료에서 나타나듯, 현대 관광객의 발길은 체험과 복합문화공간으로 향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유산청은 "신문왕이 망배하던 이견대에서만 바라봐야 한다"는 1300년 전의 논리를 앞세워 전망대 설치와 망원경 비치조차 불허하고 있다.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위치한 화장실은 문무왕과 신문왕의 사용 흔적 등 역사 고증에는 없지만 유적지 보존 구역 열외 시설물로 설치 가능한 반면, 도로와 한참 떨어진 전망대는 해당 규정에 따라 설치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70억원의 예산(228억원 확보)을 들여 주변을 정비하면서도 정작 유적의 가치를 체감할 '눈'은 가려버린 셈이다.


지금 산불 현장에서 소방 당국이 사투를 벌이며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박제된 풍경'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기개가 서린 '살아있는 역사'다.


하지만 김승수 의원이 공개한 데이터가 증명하듯,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외면받는 유산은 불길에 타버리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생명력을 잃어간다.


우리는 이제 문무대왕릉을 규제의 성역이 아닌 안전과 활용의 중심지로 재정립해야 한다.


물리적 시설이 경관을 해친다면 디지털 AR(증강현실) 망원경이나 선박 투어, 스카이워크 등 창의적인 대안을 도입해 관광객들이 대왕의 숨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것이 대왕이 바랐던 '살아있는 호국'의 정신을 잇는 길이다.


산불이 휩쓸고 간 자리에 다시 새살이 돋아야 하듯, 경주의 관광 정책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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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 데이터가 비춘 위기 신호를 외면하지 말자. 전통 유산은 박물관의 유리창 안에 있을 때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고 그 가치가 일상에서 체험될 때 비로소 진정한 보존의 의미를 완성한다.


불통의 규제라는 불길을 끄고, 문무대왕릉을 세계인이 다시 찾는 '체험형 랜드마크'로 거듭나게 하는 결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최대억 대구경북취재국장

최대억 대구경북취재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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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취재본부 최대억 기자 cd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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