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전 지주회사 도입 때 정리됐어야…
연결 재무제표 의무화된 이후도 살아남아
어설픈 정책 결정이 오래도록 기업·시장 발목
꼼꼼한 재설계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해야
과거의 어설픈 일 처리가 현재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중복상장 문제가 대표적이다.
시간을 20여 년 전으로 되돌려 보자. 그때는 고위 관료가 기자들에게 대놓고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할 정도로 공무원 파워가 셌다. 1997년 IMF외환위기가 정부, 아니 관료 주도 구조조정으로 극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여서 더욱 그랬다.
당시 정부는 재벌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과 복잡한 지배구조를 악용한 분식 회계가 외환위기의 주요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이에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함께 지배구조 투명성을 확립한다는 명분 아래 '지주회사 체제'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2003년 LG그룹이 첫 스타트를 끊으면서 재벌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가속화했다.
20여년 전 경제 관료들은 재벌 체제를 지주회사 체제로 유도할 줄만 알았지, 지주회사 체제가 주주 자본주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는 자본시장 참가자들도 후진적이었다. 정기 주주총회에서 CEO가 소액주주에게 손가락질하며 "당신 몇 주 있어?"라고 대놓고 말해도 별문제가 없었다. 당연히 지주회사 체제에서 자회사·손자회사의 상장, 즉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지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정부는 중복상장 문제를 '교통정리'할 중요한 타이밍을 다시 한번 놓쳤다. 2009년 자율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해 2011년 모든 상장사에 적용된 국제회계기준(IFRS) 말이다.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 시절과 달리 IFRS에서 상장사는 연결 재무제표가 의무였다. 비상장 자회사도 IFRS 기준에 따라 회계처리해야만 했다.
연결 재무제표에서는 모회사와 자회사의 회계 수치를 100% 합산한 후 내부거래를 제거하고 조정하여 '하나의 경제적 실체'를 보여준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자회사 중복상장을 할 경우 회계상 중복 계산(double counting)으로 주주 가치 희석과 모회사 소액주주 피해가 야기될 가능성이 높다.
이토록 이상한 제도상의 오류는 20여 년이 지난 작년에서야 해소됐다. 그것도 문제를 오래도록 방치한 정부가 아니라 국회가 상법 개정을 하면서다. 개정 상법상 이사회에 속한 등기이사는 이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 만약 자회사 중복상장을 하려면,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난해 상법 개정 이후 여러 기업의 중복상장이 멈춰 섰다. 정부의' 어설픈 일 처리' 때문에 20여년간 증시에서 당연시됐던 중복상장이 하루아침에 불가능해졌으니, 중복상장을 시도했던 기업 입장에선 억울할 만하다.
모든 중복상장이 악마화돼선 안 된다. 당연히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면서,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하고' 회사의 미래 성장을 이끄는 투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중복상장은 허용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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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한국거래소를 중심으로 중복 상장 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세우는 제도는 내일의 날개를 꺾지 않아야 한다. 주주 자본주의를 바로 세울 꼼꼼한 제도 설계만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영원히 지우고, 지속 가능한 자본시장 황금기를 열어 줄 것이다.
조시영 증권자본시장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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