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욱의 '경제학자의 의사결정법'
행동경제학이 설명하는 우리의 가장 익숙한 실수들
왜 인간은 생각 없이 같은 선택을 하게 될까
행동에서 읽는 선택과 후회의 메커니즘
우리는 대개 "그때는 최선이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떤 날은, 그 말이 유난히 허술하게 들린다. 카드 명세서가 도착하고, 계좌 잔고가 줄어들고, 한때는 그럴듯해 보였던 선택이 지금의 나를 곤란하게 만들 때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깨닫는다.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지만, 후회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반복에는 꽤 일관된 패턴이 있다는 사실을.
강민욱의 '경제학자의 의사결정법'은 바로 그 패턴을 추적하는 책이다. "왜 나는 매번 비슷한 선택을 하고, 비슷한 지점에서 후회하는가"라는 질문을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구조의 언어로 바꾼다. 귀차니즘, 현재 편향, 손실 회피, 군중 심리, 프레이밍 효과…. 이 책에 등장하는 개념들은 이미 익숙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익숙함과 이해는 다르다. 저자는 개념을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들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집요하게 끌어낸다. 오늘 운동을 건너뛴 이유, 시험을 앞두고도 벼락치기를 선택하는 이유, 할인이라는 말 앞에서 계산이 흐려지는 이유를 하나씩 복기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지점은 독자를 '이상한 사례'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여기에는 극단적인 실패담이나 성공 신화가 거의 없다. 대신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장면들이 반복된다.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갔다"는 교수들의 에피소드처럼, 지적 능력이나 전문성이 이런 오류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행동경제학을 아는 사람도, 가르치는 사람도, 결국은 같은 함정에 빠진다. 이때 독자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낀다. 문제는 나의 의지력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설계 자체에 있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책의 중심에는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의 갈등이 놓여 있다. 현재의 나는 미래의 나를 같은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돈과 시간, 선택권을 쥔 권력자처럼 행동하고, 그 대가는 미래의 내가 치른다. 국민연금을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에 국가의 공권력이 개입한 장치"로 설명하는 대목은 이 책의 문제의식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복지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에 걸친 의사결정의 실패를 조정하는 제도로 읽히는 순간, 독자는 제도와 개인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진다. 이 책이 단순한 자기계발서로 머무르지 않는 이유다.
강민욱은 독자를 꾸짖지 않는다. "왜 이렇게 못하느냐"고 묻지 않고,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를 묻는다. 그 태도 덕분에 책은 끝까지 읽히는 힘을 가진다. 하지만 이 친절함이 늘 장점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다"는 설명은 위로가 되지만, 동시에 책임을 희석시키는 문장이 되기도 한다. 구조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종종 그 구조에 자신을 맡겨버린다.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는 셈이다. 저자는 분명 '스스로와 잘 싸우는 법'을 말하지만, 싸움을 실제로 시작하는 단계까지 독자를 밀어붙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이 가진 효용은 분명하다. 우리는 흔히 합리적 선택을 말하면서도, 합리성을 결과의 평가 도구로만 사용한다. 일이 잘못되면 "그때는 비합리적이었다"고 말하고, 일이 잘되면 "그래도 선택은 옳았다"고 자위한다. '경제학자의 의사결정법'은 그 사후 판단을 멈추게 한다. 후회를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고, 후회를 만들어낸 조건들을 하나씩 해체한다. 그렇게 독자는 자신의 선택을 도덕의 문제로 재단하는 대신, 조정 가능한 메커니즘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책이 약속하는 것은 '완벽한 선택'이 아니다. 그런 선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조금 덜 후회하는 선택은 가능하다고. 같은 실수를 덜 반복하는 삶은 가능하다고. 그 가능성은 대단한 결단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오늘의 편안함이 내일의 나에게 어떤 비용을 떠넘기는지 묻는 것, 다른 사람들이 움직인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는 것, 반값이라는 말이 정말로 나에게 이익인지 다시 계산해보는 것. 그 질문들이 쌓이면, 선택의 모양은 조금씩 달라진다.
책을 덮고 나면 질문이 남는다. 나는 지금의 나를 위해 미래의 나를 얼마나 자주 희생시켜 왔는가. 그리고 그 희생을 '현실적 판단'이라는 말로 얼마나 자연스럽게 포장해왔는가. 책은 삶을 바꿔주겠다고 장담하지 않는다. 다만 삶을 바라보는 각도를 바꿔준다. 그 각도가 바뀌면, 선택은 여전히 어렵지만, 후회는 조금 덜 아프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 몫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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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의 의사결정법 | 강민욱 | 오르트 | 288쪽 |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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