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길 산책]올림픽이 끝나면 '야구 월드컵'이 온다
스포츠 이벤트의 인기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올림픽의 인기는 신군부 시대(1979~1988)에 한껏 고조됐다. 당시 권력자들이 스포츠(특히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국제경기)를 정권 유지의 간접 수단으로 이용한 탓도 있다. 국력과 비례해 선수들의 숫자도 많아지고 실력도 늘면서 성적이 상승한 영향도 있었다. 메달리스트들은 연예인급 인기를 누렸고 그들의 피땀 어린 도전기 하나하나가 '휴먼 다큐멘터리' 수준으로 주목받으며 전 국민의 눈시울을 적셨다. 올림픽 기간에는 모든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TV 시청률도 인기 드라마 뺨 치는 수준이었다.
1980년대, 1990년대를 거쳐 점점 뜨거워진 올림픽 열기는 2000년대에 정점을 찍었다. 언론의 취재 열기도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 오죽하면 라디오 PD인 나조차 두 번이나 올림픽 취재진 일원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감개무량하게도 우리 수영과 피겨스케이팅이 각각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베이징, 밴쿠버 올림픽을 현장에서 경험했다. 당시 박태환(수영), 김연아(피겨스케이팅) 선수가 따낸 금메달은 해당 종목에서 유일무이한 올림픽 금메달로 지금도 남아 있다. 아마도 그즈음이 올림픽 인기가 최고조였지 않나 싶다.
올림픽의 인기는 그 후 점점 식어가고 있다. 대중의 관심에 비례하는 시청률, 광고 판매, 버즈(buzz·사회관계망서비스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언급량) 등등 숫자가 하락세를 보여준다. 급기야 이번 '밀라노·코르티나 올림픽'은 한 종편 채널에서 독점 중계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공식 대회명(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올림픽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 국가가 주도한 스포츠 이벤트의 인기가 식었음을 느낀다. 복합적인 이유를 다 설명하긴 어렵다. 다만 우리나라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방증으로 보여진다. 국가 주도의 스포츠 이벤트 외에도 볼거리, 즐길 거리가 많아진 것이다.
동계올림픽은 며칠 후 막을 내린다. 언론의 주목, 대중의 관심은 낮아졌어도 선수들이 흘리는 땀의 가치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 스포츠의 본질은 한계에 도전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수들을 보며 열광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고된 훈련과 엄청난 긴장을 이겨내고,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몸을 던진다. 스노보드에서 금메달을 딴 최가온 선수만 해도 그랬다. 척추가 부러지는 부상에도 굴하지 않고 재활, 훈련을 해내고 올림픽 무대에 섰다. 결선 1차 시기에선 코치진이 기권하려 할 정도로 심각하게 넘어졌지만,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 결국 금메달을 따냈다. 18살 소녀가 해낸 일이다. 최 선수만 그렇겠는가? 대회에 참가한 모든 선수가 각자 한계와 싸운 끝에 그 자리에 섰을 것이다. 진심 어린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올림픽 후엔 '야구 월드컵'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열린다. 우리 대표팀은 다음 달 5일 체코와 첫 경기를 한다. 이런 국가대항전에서는 스포츠의 본질이 달라진다. 이겨야 한다. 승리가 미덕이고 목표다. 2023년 WBC에서 우리 대표팀은 최악의 졸전 끝에 예선 탈락했다. 실력으로도 졌지만, 경기 중에 보인 안일한 플레이는 야구팬으로서 참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지난 대회 결승에서 일본에 정상의 자리를 넘겨 준 미국의 복수혈전 등 볼거리가 많은 대회다. 그 가운데서 우리 대표팀도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 최소한 비중 있는 조연급으로 새로운 서사를 만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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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SBS라디오 PD·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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