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최고법원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
“재판 무한 불복은 고질적인 사회문제”

"헌법에도 어긋날 뿐 아니라 아무런 실익 없이 국민들에게 고통만 가중하는 '소송 지옥'을 불러올 우려가 크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장판사인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50·사법연수원 32기)는 전날 법원 내부 게시판(코트넷)에 '재판소원 논의에 대한 단상'이라는 글을 올려 이같이 지적했다.

지난 18일 대법원.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지난 18일 대법원.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연합뉴스

AD
원본보기 아이콘

해당 글에서 모 교수는 "조선 시대에는 중앙의 형조, 호조, 한성부뿐 아니라 각 도의 관찰사, 각 고을의 수령이 재판 권한을 갖고 있었지만 관할 경계가 모호해 백성들이 이 관청 저 관청을 돌며 같은 사건으로 재판을 청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특히 지방 수령이 교체될 때마다 이전 재판에서 패한 이들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건을 다시 들고나오는 '재판의 무한 불복'은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다"고 짚었다.


이어 "백성들이 재판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 문화에 더해 관청 간의 자존심 싸움과 상급 기관의 개입이 빈번해지면서 재판 장기화가 심화했고 이는 정작 시급히 해결돼야 할 중요 분쟁을 뒷전으로 밀어냈다"며 "수령들은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민사 사건임에도 곤장을 가해 억지로 종결하려 했고 임금은 재판 횟수를 제한하는 법령을 거듭 선포했으나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구도 헤어 나올 수 없는 '소송 지옥'이었던 조선은 사법 자원의 한계와 불복의 일상화가 결합했을 때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 연합뉴스

모성준 사법연수원 교수.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

현재 도입 논의 중인 재판소원이 유사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게 모 부장판사의 생각이다. 그는 "재판소원은 겉으로는 국민 기본권 구제를 표방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재판에 승복하지 못하는 당사자들에게 언제든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둠으로써 조선 시대의 '거듭된 송사'와 '불복'의 역사를 현대적 버전으로 재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 교수는 "현재 (재판소원 관련) 논의는 재판의 설득력과 승복률을 높이는 방안보다는 사법권을 보유한 법원을 외부 기관인 헌법재판소가 통제하겠다는 '권력 구조적 접근'에 치우쳐 있다"며 재판소원법을 "헌재를 사실상 최고법원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시도"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재판소원이 사법 권력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모 부장판사는 "최고 법원의 판결이 또 다른 기관에 의해 뒤집힐 수 있다는 가능성은 국민들에게 대법원의 재판 또한 뒤집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준다"며 "이때 사법부의 권위가 무너진 곳에는 정치적 공방과 무한 투쟁이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모 교수는 "우리가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누가 누구를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실심에서 국민의 억울함을 제대로 풀고 재판을 신속히 끝낼 것인가'이다"라며 "진정한 사법 개혁은 헌법 규정을 우회하는 기이한 심급 구조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사실심에 전폭적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재판의 완결성과 설득력을 높이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AD

한편, 재판소원은 법원 재판도 헌법소원 심판 대상으로 삼는 제도다. 헌재는 '사법부도 기본권의 구속을 받아야 한다'며 재판소원에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대법원은 '3심인 대법원판결에 대한 불복이므로 사실상 4심제가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김은하 기자 galaxy656574@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