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억 과징금 폭탄…설탕 '빅3' 담합, 어떻게 서민 지갑 털었나
본부장부터 팀장까지 촘촘한 ‘피라미드 회합’
인상 거부 업체엔 3사 공동 압박도
2024년 공정위 인지 후에도 담합 유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국내 설탕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한 CJ제일제당, 삼양사, 대한제당 등 이른바 '제당 빅3'에 부과한 4083억 원의 과징금은 단순한 제재를 넘어 '민생 약탈 카르텔'에 대한 전면전 선포로 읽힌다. 담합 사건 기준 역대 두 번째 규모이자, 사업자당 평균 부과액으로는 사상 최대치인 이번 '과징금 폭탄'의 이면에는 국가가 세운 무역장벽 안에서 서민의 고통을 기회로 삼은 기업들의 치밀하고 대담한 범행 수법이 자리 잡고 있다.
본부장부터 팀장까지 '피라미드형' 밀회…"동서는 CJ, 오리온은 삼양사가"
공정위 조사 결과 드러난 이들의 수법은 흡사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만큼 촘촘했다. 이들은 2021년 2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총 8차례에 걸쳐 가격과 인상 시기를 조직적으로 맞췄다. 합의는 직급별로 굴러갔다. 대표급과 본부장급 모임에서 큰 틀의 가격 인상 방안과 '3사 협력 체계'를 확립하면, 영업임원과 팀장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수시로 만났다. 특히 실무급인 영업팀장들은 한 달에 무려 9차례나 회합하며 세부 실행안을 조율했다.
핵심 수법은 '거래처 분할 통제'였다. 3사는 수요처별로 점유율이 가장 높은 업체가 협상을 주도하도록 역할을 나눴다. 예를 들어 동서와의 협상은 CJ가, 오리온은 삼양사가, 남양유업은 대한제당이 전담 마크하는 식이다. 이들은 협상 경과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한 곳이라도 가격 인하를 요구하면 공동으로 대응해 방어막을 쳤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이를 "원가 상승분은 칼같이 전가하고, 하락분은 늦게 반영해 이익을 극대화한 약탈적 담합"이라고 비판했다.
"국가 보호가 사익 추구 수단으로"…2007년 제재 비웃은 대담함
공정위가 이번 사건에 특히 분노하는 지점은 설탕 산업의 특수성 때문이다. 설탕은 식원자재 생산자 보호를 위해 국가가 30%의 고율 관세 등 무역장벽을 세워 국내 제당사들에 안정적인 수요를 보장해주는 산업이다. 하지만 제당사들은 이러한 국가적 혜택을 담합의 토양으로 삼았다. 공정위가 적발한 3사의 담합 규모는 3조2884억원이며, 과징금 부과 기준은 관련 매출의 15%였다. 공정위 발표에 앞서 이들을 수사했던 검찰은 담합 이후 설탕 가격이 최대 66.7%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이들은 2007년에도 동일한 혐의로 제재를 받았던 '전과'가 있음에도 경영 방식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2024년 3월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에도 1년 넘게 담합을 유지하고, 공정위 조사 정보를 공유하며 공동 대응 시나리오를 짜는 기만적인 행태까지 보였다. 주 위원장은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담합이 회사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기본적인 교육조차 직원들에게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깊은 실망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반칙은 도태" 강경 기조… 제도 대수술로 '담합 이득' 원천 차단
주 위원장은 이번 조치를 통해 시장에 타협 없는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일각에서 제기된 '기업 위기론'에 대해서도 "법과 원칙에 따른 제재를 기업 지속 가능성과 저울질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못 박았다. 오히려 "반칙하고 착취하는 기업은 도태되어야 혁신하는 기업이 성공할 공간이 열린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담합으로 얻는 이득보다 처벌로 입는 손실이 압도적으로 큰 구조를 만들기 위해 제도 대수술에 착수한다. 우선 담합 과징금의 법정 상한을 현행 매출액의 20%에서 30%로 대폭 상향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 30%의 부당 이득을 보고도 15∼20% 수준의 제재에 그친다면 담합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현재 10% 수준에 머물러 있는 반복 위반에 대한 가중 처벌 비중을 유럽연합(EU) 등 선진국 수준인 50%까지 확대하기 위해 3개월 내에 시행령과 고시를 개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 제도에 의존하던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 공정위의 자체적인 인지 조사와 경제 분석 역량을 강화하고, 법적 조사권까지 보강해 기업들이 담합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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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는 설탕에 이어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밀가루, 전분당, 계란, 돼지고기 등 민생 밀접 품목에 대해서도 '신속대응팀'을 투입해 엄정 조치할 방침이다. 특히 밀가루 담합 건은 2월 중 심의 상정을 앞두고 있어 '먹거리 카르텔'에 대한 추가 폭격이 예고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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