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시각]지역의사 10년 '유배' 아닌 '사명' 되려면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의과대학 정원을 연평균 668명씩 총 3342명 늘리기로 확정했다. 2년 전 대한민국의 의료를 멈춰 세웠던 의정 갈등을 떠올리면 이번 확정안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이번 정책의 핵심인 '지역의사제'는 무너진 지역·필수의료를 소생시킬 마지막 보루로 제시됐다. 하지만 숫자가 정해졌다고 정책이 순조롭게 안착하리란 보장은 없다. 이제는 "얼마나 많이 뽑느냐"가 아니라 "어떤 학생을 선발해 어떻게 지역의사로 길러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지역의사제가 의대 입학을 위한 '입시 통로'로 전락하는 것이다. 만약 지역 의대가 성적에 맞춰 지역인재선발전형을 택하고, 의무복무 기간만 채운 뒤 다시 수도권으로 떠나겠다는 계산이 깔린 인재들로 채워진다면 우리가 기대했던 지역의료의 미래는 없다. 지역의사제는 단순히 지역에서 10년을 버틸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건강과 생명을 책임질 역량 있는 전문 의료인을 선발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선발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 우수한 성적은 기본이고, 지역의료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인술(仁術)을 펼치고자 하는 의지와 사명감이 선발 시 평가기준이 돼야 한다. 공정성 논란이나 특혜 시비도 없어야 한다. 한 의대 교수는 "지자체장이나 학교장의 추천을 받는 전형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며 "추천이 많아지면 아무래도 우회로가 생기기 쉽고, 이는 지역 주민들에게조차 '성적이 부족해도 합격할 수 있는 제도'라는 인식을 줘 지역의료를 기피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선발만큼 중요한 것이 교육과 수련의 질이다. "지방 의대에 가면 교육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면 우수한 인재는 지역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증원된 인원에 걸맞은 교수인력을 확보하고, 실습 인프라를 수도권 대형 병원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지역의사제로 뽑힌 학생이 "내가 서울 못지않은 수준 높은 교육과 수련을 받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어야 비로소 지역에서도 보람을 찾고 정착할 결심을 할 수 있다.
지역의사에게 10년이라는 의무복무가 마치 '유배'로 느껴지게 해서도 안 된다. 복무 기간에 연구비 지원, 해외 연수 기회, 지역 내 전문의 채용 시 파격적인 처우 보장 등 유인책이 마련돼야 하는 이유다. 이들이 지역에서 수련받고 전문의가 됐을 때 수도권 병원 못지않은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들의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지역의사는 실력이 부족하지 않을까"하는 편견이 그간 서울 병원으로의 집중과 지역 병원의 쇠락을 가져온 원인 중 하나임을 부정할 수 없다. 지역 거점 병원의 역량을 강화해 '서울로 가지 않아도 충분히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신뢰를 심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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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번 의대 증원이 "지역·필수·공공의료 개혁을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지역의사제가 성공하기 위해선 입시 제도의 정교함을 넘어 교육과 수련, 현장의 처우가 입체적으로 맞물려 설계돼야 한다. 지역의료를 지키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의사로서의 소명을 실천하는 보람 있는 선택'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정부와 의료계, 우리 사회 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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