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개성공단 '보상'과 '지원'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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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번도 정부로부터 보상받은 적이 없습니다. 정부가 그런 표현을 쓰지 않거든요." 지난 10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 10년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 입주기업 대표가 이렇게 말했다. 정부의 보상금 지급 현황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정부가 마련한 남북경협보험금과 같은 모든 대책이 공식적으로 '보상'이 아닌 '지원'이란 표현으로 불려왔다고 기업인들은 입을 모았다.


지금껏 정부가 입주기업들을 향해 보상이란 단어를 한 번도 꺼내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니다. "정부 차원의 필요한 지원을 강구하라"(박근혜 전 대통령·2016년 2월 국가안보회의), "가능한 지원을 신속히 추진하겠다"(홍용표 전 통일부 장관·2016년 2월 브리핑). 정부는 2017년 보험금 지급이 대부분 마무리된 시점까지도 일관되게 지원이란 표현을 사용해왔다.

속내를 들춰보면 이유가 간단치 않다. 보상은 법률적 용어다. '손해·손실이 발생한 사람에게 금전으로 정당한 가치를 돌려주는 행위'를 뜻한다. 남북협력기금법 등 현행법엔 피해 기업에 대한 보상 규정이 없다. 정부가 법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보상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면 입주기업들에 대한 정부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반면에 정부가 고집하는 '지원'은 재량적 조치에 가깝다. 의도적으로 개념을 구분함으로써 정책적·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책임을 빼놓을 수 있을까. 2016년 2월10일, 수많은 기업인이 도망치듯 공장을 빠져나왔다. 대다수는 저렴한 인건비와 임차료를 내세운 정부의 적극적인 유인책과 '정치적 리스크를 관리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입주를 결정했다. 게다가 '공단 재개 시 전액 상환' 조건을 달아 지급된 남북경협보험금조차 정부는 아직 전부 집행하지 않았다. 영업손실액 등을 제외한 정부의 피해 인정액으로 타협하더라도, 여전히 800억원이 넘는 금액이 미지급된 이 상황을 누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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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책임 있게 나서 주십시오. 앞으로 어떤 기업이 남북 경협에 참여하겠습니까." 기자회견이 한 기업인의 호소로 마무리됐다. 어쩌면 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보상책이니, 지원책이니 하는 어지러운 논쟁이 아닌 10년 전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어지고 있는 이 사태에 대한 진심 어린 성찰인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기업인의 고통과 손실에 대해 정부가 더 적극적이고 명료하게 답해야 한다.


이서희 기자 daw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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