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병, 나약한 개인 치부
의지보다 '회복의 시간' 필요

[논단]보이지 않는 병 '괜찮은 척' 요구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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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흔히 우울증, 불안장애라 하면, 극단적인 모습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환자들은 오히려 너무나도 정상이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회사에 출근하고 회의, 모임에서 웃는다. 그렇게 행동하도록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면도 있다. 그 과정에서 우울증, 불안장애는 보이지 않는 병이란 이유로, 고통이 개인의 몫으로 밀려난다. 사회는 눈에 보이는 모습만을 기준으로 삼으며, 개인을 평가하고 이면의 고통에 대해선 침묵토록 하는 것이다.


가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손에 가시가 박혔거나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걱정, 관심이 쏟아진다. 그에 반해, 우울증에는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는 핀잔을 주거나 "생각을 바꾸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등 쉽게 말한다. 마음의 병을 개인 의지나 성격의 문제로 오해해서 나오는 말들이다. 이런 말들은 오히려 깊은 상처가 된다. 우울한 이유를 스스로 설명, 증명해야 한다는 부담도 준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는 이런 현실을 잘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정신질환에 대한 전반적 이해도는 개선됐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정신건강 문제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은 73.6%로, 2022년 대비 약 10%포인트나 증가했다. 특히 심각한 스트레스와 수일간 지속되는 우울감, 인터넷·스마트폰 등 행동중독 경험이 크게 늘었다. 인식과 대응 사이에도 괴리가 있다. '누구나 정신질환에 걸릴 수 있다'는 인식은 확산됐지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응답은 오히려 감소했다.

많은 환자들이 사회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을 갖고 살아간다. 힘들다고 말하면 게으르다는 평가를 받을까 걱정해, 쉬고 싶어도 참고 버틴다.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 나서야 무너진다. 방 안, 이불 속에서 아주 잠시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


이런 솔직함은 밖에서도 발현돼야 한다. 이는 차가운 조직 논리에도 어긋나지 않는다. 충분한 회복 없이 버티는 일상은 무너지게 돼 있다. 집중력은 흐려지고 판단은 흔들린다. 누적되는 결근과 이직은 차후 개인의 문제를 넘어 조직의 손실이 된다. 그리고 사회가 함께 치러야 할 비용으로 돌아온다. 그에 반해, 회복을 존중하면 개인의 삶을 지켜내고 장기적으론 더 안정적인 노동 참여와 사회 전체의 의료비 부담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건강 문제는 제도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사회적 인식부터 변해야 한다.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명백한 질환이고 회복에는 시간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가족의 말 한마디는 치료만큼 중요하다. "왜 그렇게까지 힘드냐"는 질문보다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공감이 먼저 나와야 한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잠시 일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여유,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환자들에겐 결정적인 버팀목이 된다.


우리는 이미 공동체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과거 위기 속에서 우리를 버티게 한 힘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감당하겠다는 암묵적인 합의였다. 이제 그 시선을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고통으로 확장할 때다. 더 강해지라는 말보단 천천히 회복해도 괜찮다는 사회적 허용, 함께 안고 가겠단 마음이 우선돼야 한다. 그것이 곧 우리 사회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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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일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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