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료 조 단위 지출"… 철강·석화, 덮쳐오는 '에너지 청구서'에 비명
미·중보다 높은 요금에 비용 경쟁력 저하
정산단가는 하락…산업용 요금은 상승
원가 연동 없는 요금 체계에 업계 불만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석유화학과 철강 등 국내 주요 장치산업의 원가 구조와 수익성에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력 사용 비중이 높은 산업 특성상 전기요금 인상은 곧바로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만, 글로벌 경기 침체와 저가 수입산 공세로 인해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전력 소비 업종인 철강과 석유화학 주요 기업들의 연간 전기요금 지출액은 최근 2년 사이 급격히 불어났다. 한 대형 철강사의 경우 연간 전기요금 부담액이 최근 조단위로 올라섰다. 석유화학 업계 역시 고효율 설비 전환에도 불구하고 전력비 지출이 전년 대비 20~30% 이상 증가하며 수익성이 악화되는 추세다.
석유화학 업계에서는 전기요금을 인건비보다 통제하기 어려운 고정비로 인식한다. 나프타분해설비(NCC) 등 주요 공정이 24시간 연속 가동되는 구조여서, 전기요금 인상은 가동률과 무관하게 원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석유화학 제품은 글로벌 시황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전기요금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은 곧바로 영업이익률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이 원가 경쟁력"이라며 "중국은 인건비가 낮고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아 전기요금까지 저렴하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전기요금만큼이라도 부담이 낮아져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철강 업계 역시 산업용 전기요금을 수익성 악화의 핵심 요인으로 꼽는다. 고로와 전기로를 가동하는 철강 공정 특성상 전력 사용량이 많아 요금 인상 시 제조원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특히 철강 제품은 글로벌 가격 경쟁이 치열해 전기요금 상승분을 판매 가격에 반영하기 어려운 구조다. 업계에서는 전기요금이 사실상 국내 철강사의 비용 경쟁력을 좌우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연간 수천억원 수준이던 전기요금이 이제는 조단위로 늘었다"며 "탄소중립 기조로 전기로 사용은 늘었지만 가격을 올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력 직접 구매나 자가 발전을 검토하지만, 한전과의 복잡한 계약 구조가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산업계는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요 경쟁국 대비 높은 수준이라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지적한다. 지난해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평균 산업용 전기요금은 킬로와트시당 181원으로, 미국 평균 112원을 크게 웃돌았다.
전기 원가와 요금 간 괴리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기 원가에 해당하는 정산단가는 2022년 킬로와트시당 154.17원에서 지난해 125.45원으로 낮아졌지만, 같은 기간 산업용 전기요금은 119원에서 181원으로 52.1% 인상됐다. 업계에서는 연료 가격 하락으로 전기 원가가 낮아졌음에도 요금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전기 원가 변화가 산업용 전기요금에 보다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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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훈 인천대 명예교수는 "2001년까지만 해도 산업용 전기가 주택용보다 저렴했지만, 한전 적자를 메우기 위해 정치적으로 부담이 적은 산업용 요금이 지속적으로 인상됐다"며 "중국과 미국이 100원대 초반인 상황에서 국내 산업용 전기요금이 190원 수준까지 오르면서 국가 경쟁력이 크게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기요금 인하와 함께 전력 직접 구매나 자가 발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허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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