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선택하세요'라는 말이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사회
표준이 된 선택, 예외가 되는 거절
강요하지 않는 사회가 만드는 불이익의 규칙
우리는 많은 선택권을 가진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서비스 가입도, 기술 사용도, 제도 참여도 모두 자율이라는 말로 포장된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 선택은 점점 자유의 표현이라기보다, 특정 방식에 얼마나 쉽게 적응하는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 선택할 수는 있지만, 거절하기는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다.
이 변화는 강제의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예전의 강제는 명시적이었다. 법과 규칙, 금지와 처벌이 분명했다. 반면 오늘날의 강제는 형식적으로는 선택을 남겨둔다. 다만 선택하지 않았을 때의 비용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높인다. 그 비용은 기다림이나 불편, 정보 접근의 제한, 기회의 축소처럼 비교적 조용한 형태로 나타난다.
유럽의 쿠키 동의 화면은 이 구조를 잘 보여준다. 법적으로 사용자는 쿠키 수집을 거부할 수 있다. 하지만 거부 버튼은 여러 단계 안쪽에 숨어 있고, 모두 동의는 눈에 띄는 색으로 전면에 배치된다. 선택은 존재하지만, 선택의 경로는 비대칭적이다. 이는 자유의 확대가 아니라 거절 비용의 인상에 가깝다.
비슷한 현상은 미국의 디지털 서비스에서도 반복된다. 아마존 프라임은 가입을 권유할 뿐 강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입하지 않은 사용자는 배송 속도, 가격, 접근 가능한 혜택에서 지속적으로 불리해진다. 이때 불이익은 '차별'이 아니라 '옵션의 결과'로 설명된다. 문제는 그 옵션이 사실상 표준이 되었다는 점이다. 선택은 남아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점점 예외가 된다.
또한, 식당이나 카페에서 키오스크 사용은 여전히 선택 사항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키오스크 앞에는 즉시 주문이 가능한 화면이 있고, 직원에게 직접 주문하려는 사람은 별도의 줄을 서야 한다. 때로는 그 줄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도 하다. 주문 방식은 선택할 수 있지만, 대기 시간은 선택에 따라 다르게 배분된다. 선택은 남아 있지만, 선택하지 않는 쪽이 감내해야 할 비용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 구조에서 책임이 어떻게 배분되는가이다. 결과가 불리하게 나타나면, 그것은 언제나 개인의 선택으로 귀속된다. 시스템은 선택권을 제공했기 때문에 책임에서 빠져나온다. 그러나 선택의 조건과 맥락을 설계한 주체는 보이지 않는다. 자유의 형식을 유지한 채, 책임만 개인에게 남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을 허용하면서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설계는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다. 다만 최근의 변화는 그 방식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는 데 있다. 선택은 더 많아졌지만, 선택의 실질적 자유는 오히려 좁아졌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지만, 불이익 없이 선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의 문제는 선택권이 있는가가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거절이 사회적으로 허용되는가이다. 선택하지 않았을 때 감내해야 할 비용이 개인에게만 집중되는 사회에서, 자유는 점점 형식적인 개념이 된다. 이 사회는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조건을 만든다. 그리고 그 조건에 적응하지 못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린다. 이것이 오늘날 선택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선택의 언어가 넘쳐날수록, 우리는 그 선택이 어떤 구조 위에서 가능해졌는지를 더 자주 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유는 계속 언급되겠지만, 실제로 선택의 대상이 되는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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