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맥]'강약약강' 트럼프의 선택적 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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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투자특별법 제정 지연을 빌미로 미국이 한국과 합의 관세를 15%에서 25%로 인상하는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인도와 관세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한국을 본보기 삼아 합의 이행을 압박하는 동시에, 인도에는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지난 1년간 미·인도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오히려 인도가 러시아산 원유를 대량 수입하며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 역할을 한다는 이유로 트럼프 대통령은 추가 관세 25%를 부과했고, 이에 작년 8월 이후 인도는 50%라는 징벌적 관세를 감내해야 했다. 작년 2월 모디 인도 총리가 급히 방미해 트럼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일본처럼 통상협상을 서둘렀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트럼프의 고관세 방침만 재확인한 채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졌었다.

반전의 계기는 10월 말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였다. 미국은 인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한 직후로, 인도는 이미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며 맞서고 있었다. 미국으로서는 일방적인 압박 정책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대외적 고립 심화도 트럼프의 태도 변화에 일조했다. 지난 연말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매입 주장을 다시 꺼내 들면서 유럽 국가들의 대미 감정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EU 의회는 미국과 관세 협정 비준을 연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연초 다보스 포럼(WEF)에 참석해 유럽 달래기에 나섰으나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왔다. 오히려 독일 등 다수 국가가 중국과 다시 밀착하는 행보를 보일 정도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내 상황도 녹록지 않다.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무리한 불법이민 색출 작전으로 미네소타에서 시민 2명이 사망하며 여론이 들끓었다. 특히 지난해 9월 조지아주 현대차·LG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해 475명의 근로자를 체포한 것도 바로 이 ICE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잦은 인명 사고에도 유가족 위로보다는 불법이민 색출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국민적 공분을 샀다.


여기에 오는 4월 새 회계연도를 앞두고 예산 협상마저 난항을 겪으며 연방정부 '셧다운(업무 정지)'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지난 1월 부분적 셧다운을 겪고 단기 예산안으로 급한 불만 껐을 뿐, 근본적 합의가 없어 4월 초 셧다운 재발 우려가 크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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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선거를 앞둔 집권 2년 차의 트럼프 대통령은 무리하고 일방적인 정책이 빚어낸 대내외 악재에 포위된 형국이다. 영국과 EU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이며, 발표된 팩트시트 역시 기본 합의일 뿐 완전 타결은 아니다. 한국 역시 비관세장벽 해소를 위한 협상을 지속하고 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승리를 위해 올해 안에 가시적인 성과가 절실했을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한국에 투자특별법 제정을 그토록 강요한 배경이다. EU와 손잡은 인도는 감싸 안으면서, 안보와 경제 양측면에서 대미 의존도가 높아 반발하기 힘든 한국에는 보복 조치를 단행한 것이다. 이는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무자비한 트럼프 특유의 '강약약강' 기질을 여실히 드러낸다.


여러 정황상 이번 인도와 협상은 급조된 측면이 강하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정도만 합의됐을 뿐, 나머지 성과는 의문투성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인도의 미국산 상품 5000억달러 수입'은 2024년 인도의 대미 수입액이 400억달러 수준임을 감안할 때 실현 불가능한 수치다. 협상 성과를 과대포장하려는 전형적인 홍보 전략일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 우리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기로 했다. 투자 약속을 해놓고 환율 불안을 이유로 시점을 늦추겠다고 한 기재부 장관의 발언과 입법 지연이 트럼프에게 관세 인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실책이다. 연간 200억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는 분명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신속히 법을 제정하고, 관세를 15%로 유지하도록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다. 지난해 미국이 합의 내용 못지않게 '이행'을 강조했던 점을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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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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