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 사고 뒤 코로나 감염 겹쳐 88세로 영면
대종상 휩쓴 명장…'씨네하우스' 설립 혁신도

정진우 영화감독.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정진우 영화감독. 사진=조용준 기자 jun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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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정진우 감독이 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8세.


고인은 이날 오후 8시께 서울 강남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영화계에 따르면 두 달여 전 반려견 산책 중 낙상 사고를 당해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코로나19 감염이 겹쳐 기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임종 직전 평생의 영화적 동지였던 임권택 감독과 이우석 동아수출공사 회장이 병실을 찾아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고 전해진다.

1938년생인 고인은 1962년 영화 '외아들'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후 1960~80년대를 관통하며 토속적 에로티시즘과 사회비판적 시각이 공존하는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1980년대에 연출력은 정점을 찍었다. 정윤희 주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1980)'로 대종상 아홉 부문을 석권했고, 이듬해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1981)'로 6관왕을 차지했다. 1984년에는 '자녀목'으로 대종상 감독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당대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한국 영화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선구자이기도 했다. 1972년 '섬개구리 만세'로 베를린국제영화제 본선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1984년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세계 10대 감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1993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유작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5)'까지 연출작은 쉰네 편에 달한다. 열정은 스크린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고인은 영화산업의 현대화를 이끈 혁신가였다. 자신이 설립한 우진필름을 통해 다수의 명작을 제작했으며, 1989년에는 국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의 효시인 '씨네하우스'를 건립해 극장 문화의 새 지평을 열었다. 1967년 한국영화감독협회 창립, 1984년 영화복지재단 설립, 1985년 영화인협회 이사장 역임 등 영화인들의 권익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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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으로는 아내와 1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남구 삼성의료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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