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차 당대회 행정개혁 가속도
행정구역 통폐합 공무원 감축
'구호보다 실천' 충돌없이 진행

[아시아르포]"개혁을 관리하는 정치" 베트남의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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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겨울 대기는 악명이 높다. 오토바이가 내뿜는 매연이 분지 지형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색빛 하늘 아래 숨을 고르다 보면 뿌연 먼지 속 도시를 다시 찾을 이유가 있는지 잠시 망설이게 된다. 그럼에도 하노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지난해 실질성장률 약 8%) 가운데 하나이며, 한국인 장기 거주자 역시 빠르게 늘고 있는 곳(현재 하노이를 포함한 북부 지역의 한국인 거주자는 약 6만명으로 추정된다)이다.


하노이의 신흥 한인타운인 미딩(My Dinh)은 한국어 간판이 즐비하며, 한국의 산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 전문가들이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지역이 됐다. 1월 중순 하노이를 찾았을 때 도시는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회(1월20~24일)를 앞두고 붉은 깃발로 가득 차 있었다. 주요 도로와 관공서 주변에 늘어선 기념비와 깃발은 회색 도시 풍경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예상대로 공안통 출신 또럼 서기장은 5년 임기를 공식 추인받았고, 그간 준비돼온 개혁 의제들 역시 당의 승인 아래 본격적 실행 단계로 접어들었다.

지난달 중순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회를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 시내 곳곳에 붉은 깃발이 설치돼 있다.

지난달 중순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회를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 시내 곳곳에 붉은 깃발이 설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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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지만 뜨거운 구조 개혁

최근 베트남의 정치 변화를 바라보며 가장 먼저 드는 인상은 '조용하지만 단단하다'는 느낌이다. 격렬한 정치적 동요도, 요란한 이념 선전도 없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국가 운영의 핵심 구조를 직접 겨냥한 개혁이 상당한 속도와 일관성을 갖고 추진되고 있다. 2025년을 전후해 단행된 행정개혁과 이번 제14차 당대회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지난해 여름 본격 시행된 행정개혁은 개혁 동력을 잃어가던 여타 아시아 국가들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국가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은 권한을 쥔 공무원의 부패와 비대해진 행정조직이다. 그런데 베트남은 이 문제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뤘다. 또럼 서기장을 위시한 지도부는 복잡한 행정 단계를 줄이고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며, 공무원 수를 실질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개혁안을 밀어 붙였다. 기존 63개의 성·직할시를 34개로 통합하고 군·현 단위의 중간 행정조직을 폐지한 것이다. 과거와 달리 IT가 발전해 중앙에서 현장까지 직통으로 연결할 수 있고, 더 근본적으론 복잡한 행정 제도가 대형 국가프로젝트에 걸림돌이 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또럼 서기장은 최근 회의에서 행정개혁과 관련해 "행정개혁은 조직을 줄이기 위한 조치가 아니라 국가를 더 잘 관리하기 위한 선택"이라며 "불필요한 절차와 중첩된 권한을 정리하지 못하면 국가는 성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효과는 행정구역 개편으로 단계적으로 공무원 수가 최대 30% 가까이 줄어든다는 점. 불필요한 공무원 숫자는 외국인투자자에게는 '끊임없는 뒷돈(부패)' 문제와 직결된다. 그만큼 투자 효율이 나빠진다는 얘기다. 사회주의 국가가 내부 관료 조직의 과잉을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손을 대는 일은 역사적으로 흔치 않다.


지난달 중순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회를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 시내에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정호재 제공

지난달 중순 제14차 공산당 전국대회를 앞두고 베트남 하노이 시내에 홍보물이 설치돼 있다. 정호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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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관리하는 정치'로의 이동

베트남 지도부의 구상은 '통제 가능한 국가'로의 재정렬이다. 행정 단계가 많고 공무원 조직이 비대할수록 정책 집행은 느려지고 책임은 흐려진다. 특히 비대한 관료 조직을 구조적 위험으로 인식한 듯하다. 국기를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가를 관리 가능한 크기와 구조로 다시 정렬하려는 선택이다.


이 지점에서 제14차 당대회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새로운 개혁을 선언하는 자리라기보다 이미 진행 중인 구조조정을 정치적으로 확정하는 무대였다. 지도부 인선과 정치국 구성 역시 급진적 변화보다는 안정과 관리, 집행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정리됐다. 특히 또럼 서기장의 정치적 성장 배경이 된 공안 출신 인사들의 영향력이 유지됐다는 점은 현재 베트남 권력 구조의 중심축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준다. 현재 공안 중심 지도부는 대외 갈등이나 이념 경쟁보다 내부 관리와 경제 운영, 사회 안정을 우선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배양수 부산외대 명예교수는 "제14차 당대회 이후 베트남 정치는 '개혁을 말하는 정치'에서 '개혁을 관리하는 정치'로 이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지도부는 이미 방향을 정했고, 이제는 그 방향을 흔들림 없이 집행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행정 단계 축소와 공무원 감축이 요란한 선언 없이 일관되게 추진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개혁이 대중적 갈등이나 정치적 소요가 전혀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베트남 지도부가 높은 수준의 통치 자신감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개혁을 정치적 선동으로 밀어붙이기보다 제도와 조직의 힘으로 작동시킨다는 얘기다. 반부패 역시 캠페인이 아니라 제도화된 관리 기능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에서 체제 운영의 방향은 분명하다. 베트남은 경제나 산업적으로 보고 배울 만한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행정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손보려는 결단력만큼은 여러 아시아 국가의 귀감이 되고 있다.


전쟁국가에서 관리국가로, 혁명국가에서 운영국가로의 전환은 분명 아세안 국가들 가운데 돋보인다. 제14차 당대회와 최근의 행정개혁은 베트남 지도부가 그 전환을 실제로 감당할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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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재 아시아비전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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