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의 맥]약가인하 정책이 놓치고 있는 것
제약 혁신은 공짜가 아냐
투자와 도전의 선순환 긴요
약가정책이 환경 조성의 핵심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이 전례 없는 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2025년 의약품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고, 신약 기술수출도 지난해 22건, 총 21조원의 실적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국내 개발신약의 행보도 주목된다. 1999년 이후 현재까지 총 41개의 국산 신약이 허가를 받았다. 이 가운데 약 30%인 12개가 최근 5년 사이에 등장,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미래 경쟁력을 가늠하는 신약 파이프라인 수는 3386개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다. 이는 산업 혁신과 이를 뒷받침한 정책적 환경이 결합된 결과다.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회사)에 비해 규모가 작은 국내 기업들이 성과를 낸 밑바탕에 국산 전문의약품(제네릭의약품)이 있다. 국내 제약기업들은 국산 전문의약품을 기반으로 확보한 수익을 연구개발(R&D)에 재투자하는 선순환구조를 통해 신약개발 역량을 축적해 왔다. 문제는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국산 전문의약품에 대한 약가 인하 정책이 선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국산 전문의약품을 건강보험 재정 절감의 대상으로만 여겨 대규모 약가 인하를 단행하면 R&D 투자 위축은 물론 설비 투자 감소, 인력 감축, 공급망 약화 등 산업 전반의 기반이 심대히 흔들린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정부, 제약산업 구조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이번 약가 인하 정책의 추진 배경에는 국내 제약산업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글로벌 신약 개발 기업과 제네릭 전문 기업이 분리된 구조다. 반면 한국 제약산업은 다수의 기업이 국산 전문의약품을 통한 이익으로 신약 R&D를 수행하는 구조 속에서 성장해 왔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안전성과 효과는 동등하면서 가격은 저렴한 국산 전문의약품은 국민의 의약품 접근성을 책임지는 동시에 신약개발의 재정적 기반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더욱이 국내 제약산업의 경우 R&D 재원의 대부분(94%·2023년)을 기업이 자체 조달한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 약가 인하 정책이 단행되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 고위험·장기 연구 대신 단기 성과 중심의 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결국 산업 경쟁력 저하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제약산업이 여전히 글로벌 빅파마와 격차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선택은 더욱 치명적이다. 우리가 그들과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해법은 혁신뿐이다. 혁신은 기술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기술 개발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를 통한 혁신이 지속적으로 순환될 수 있는 산업 구조, 즉 기업이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 약가 정책은 바로 그 환경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일방적 정책 추진, 보건안보 기반 흔들 수도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수익성의 급격한 악화가 국민에게 꼭 필요한 퇴장방지의약품이나 저가 필수의약품의 생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내몰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 안정적 의약품 공급으로 국민건강을 지켜낸 대한민국 보건안보 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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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약가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절감도 중요하지만 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유인할 수 있는 조화로운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 기반이 유지될 때 신약 개발이라는 불확실성이 큰 도전에 나설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산업계의 도전을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촉진하고 가속하는 데 있다. 그래야만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나아갈 수 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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