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단속 장비 없는 고속도로'
소비자 확인 불가, 신뢰 얻지 못해

 [논단]기술적 검증 불가능한 'GMO표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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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2월31일부터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가 시행된다. 새로운 제도를 만든 것은 아니다. 이미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GMO 표시제'의 적용 대상을 확대하는 것일 뿐이다.


'알 권리'를 강조하는 소비자단체와 국산 콩·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민이 환영하고 있다. 정반대로 소비자와 식품 산업계의 입장은 난처하다. 콩기름·전분당의 가격이 오르고, 원료 확보도 걱정해야 한다. 소비자·환경이 더 안전하고 깨끗해지는 것도 아니다.

완전표시제가 시행된 이후에 예상되는 시장의 혼란도 걱정이다. 유전자 변형 DNA·단백질이 제거된 전분당·콩기름에서 GMO 원료 사용 여부를 판단하는 일이 기술적으로 절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GMO 완전표시제에서는 숙달된 검사원이 육안으로 구분할 수 있는 특징을 확인하는 '원산지표시제'의 현품(現品) 검사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서 재배해서 수입하는 옥수수·콩에 대해서 유럽연합(EU)의 'GMO 생산이력제'를 적용할 수도 없다.


결국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생산업자의 일방적인 GMO 표시를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다. 과연 소비자가 현실적으로 확인이 가능하지 않은 GMO 완전표시제를 신뢰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칫하면 관리가 불가능한 완전표시제가 사회적 불신만 증폭시키는 악법이 될 수도 있다.

GMO 완전표시제의 관리를 담당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먼 산을 보고 있다. 수입업자가 수입 과정에서 GMO를 확실하게 구분해서 취급했다고 밝히는 '구분유통증명서'를 믿고 있다. 식약처의 소극적인 입장은 고속도로에서 '과속하지 않겠다'는 운전자의 서약을 믿고 과속 단속 장비를 갖추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데 새로 개통하는 고속도로는 과속 단속 장비를 갖추기 전에는 예외 없이 폭주족의 놀이터가 돼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식품 시장은 다를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완전표시제 시행에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도 어색하다. 대부분 국산 non-GMO 원료를 사용하는 간장은 내년부터 당장 시행하고, 전분당과 대두유의 경우에는 수입 GMO 원료의 활용 비중에 따라 유예기간을 차등화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업자에게 유예기간에 필요한 뚜렷한 명분이 없다.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수입 옥수수·콩에 반드시 계약재배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GMO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극복하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유전자 변형이 '신의 영역을 침해한다'는 낡은 인식은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유전자 변형이 새로운 것도 아니다. 품종 개량을 위해 잡종교배를 활용하는 '육종(育種)'도 유전자 변형 기술이다. 육종에 의한 유전자 변형은 괜찮고, '역전사(逆轉寫)'나 '유전자가위'와 같은 첨단 생명공학 기술에 의한 유전자 변형은 안 된다는 억지는 부끄러운 것이다.


GMO의 인체·환경 위해성에 대한 우려도 의미가 없다. GMO의 위해 가능성은 전통적인 육종에 의한 농수축산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명백한 과학적 팩트다. 심지어 GMO 거부에 앞장서고 있는 영국의 왕립학회도 GMO의 안전성은 인정한다. 식량의 절반을 수입하고, 곡물 자급률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가 국산 농산물을 지키기 위해 GMO를 거부한다는 억지는 소가 들어도 웃을 억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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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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